파리는 후배들 몫…노장들의 아름다운 퇴장

누군가는 금메달로, 누군가는 노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8일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베테랑들의 활약을 돌아본다.

8일 끝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선수들. 펜싱 여자 에페 2관왕 최인정. [연합뉴스]

대회 초반 메달 레이스를 이끈 건 펜싱이었다. 특히 여자 에페 최인정(33·계룡시청)은 개인전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후배 송세라를 결승에서 이긴 데 이어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2관왕에 올랐다. 그동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던 그는 마지막 무대를 누구보다 화려하게 장식했다.

최인정은 “선수 생활을 2관왕으로 마무리하게 돼 행복하다. 특히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 더 뿌듯하다”고 기뻐했다. 내년에 열리는 파리올림픽 도전을 포기한 그는 “내가 떠나도 대표팀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못다 이룬 올림픽 금메달을 후배들이 내년 파리에서 따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펜싱 플뢰레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허준. [뉴스1]

남자 플뢰레 대표팀 맏형 허준(35·광주시청)은 단체전 결승전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펼쳐 2연패에 기여했다. 1m68㎝의 단신인데도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해왔던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기로 했다. 허준은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앞으로 후배 선수들이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근대5종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딴 정진화(왼쪽). 장진영 기자

근대5종 정진화(34·LH)도 국가대표 은퇴전을 치렀다. 2017년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그는 도쿄올림픽에선 4위에 올랐고, 이번 대회에선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정진화는 “마지막을 금메달로 장식해 기분 좋다”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마음에 은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남자 계주 400m 동메달을 따낸 김국영(왼쪽 셋째). [뉴스1]

육상 대표팀의 베테랑 김국영(32·광주광역시청)은 마지막이 된 자신의 4번째 아시안게임에서 첫 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정태(27·안양시청)·이재성(22·한국체대)·고승환(26·광주광역시청)과 함께 나선 남자 400ｍ 계주에서 38초74의 한국 타이기록을 세우며 동메달을 따냈다. 김국영은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다. 국가대표로 더 뛸 수는 있지만,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종합 대회이기에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무술 쿠라시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따낸 김민규(41)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유도 선수로 은퇴한 뒤 체육관을 운영하며 비슷한 종목인 쿠라시로 전향한 그는 앞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복싱 남자 92㎏급 동메달리스트 정재민(35·남원시청)도 은퇴를 결정했다.

여자 농구 김단비. [뉴스1]

남자 하키 이남용. 김종호 기자

여자 농구 대표팀 에이스 김단비(33·우리은행)와 국가대표로 300경기 이상 출전한 남자 하키 대표팀 주장 이남용(40·성남시청)도 고별전을 치렀다. 김단비와 이남용은 나란히 동메달을 따냈다. 목표로 했던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남자 레슬링 류한수. [연합뉴스]

한국 레슬링의 ‘쌍두마차’ 류한수(35)와 김현우(35·이상 삼성생명)는 아쉽게 매트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뒤 나란히 결혼하려 했던 둘은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1년 미뤄지면서 마음고생을 했다. 두 선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지만, 류한수는 8강에서, 김현우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졌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