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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 법관 인사·전원합의체 올스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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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03면

이균용 임명동의안 부결 파장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6일 열린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재석 295명 가운데 찬성이 118표, 반대 175표, 기권 2표로 찬성표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관 이후 35년 만이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6일 열린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재석 295명 가운데 찬성이 118표, 반대 175표, 기권 2표로 찬성표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관 이후 35년 만이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 이후 지난달 25일 시작된 안철상 권한대행 체제는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언제 끝날지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통상 대통령실이 검증작업을 거쳐 후보자를 지명하는 데 1~2개월이 걸리고, 지명 이후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기까지도 1~2개월이 걸린다. 지금부터 대통령실이 새 후보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장 3~4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후보자의 경우 8월 21일 후보자로 지명된 뒤 9월 20일 인사청문회 종료까지 딱 31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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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안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의 임기도 내년 1월로 종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악의 경우 대법원장 포함 14명의 대법관이 정원인 대법원이 11인 체제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대법관 후보자 지명부터 임명까지 아무리 짧아도 한 달이 소요되는 걸 고려하면 통상 11월에는 두 사람의 후임자를 지명해야 한다. 대법원장 공석 때 대법관을 제청한 전례는 없다. 신임 대법원장이 11월 전에 임명돼야 대법관 연쇄 공석 사태를 피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균용

이균용

◆향후 일정은=역사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는 5차례 있었다. 2대 조용순 대법원장과 3대 조진만 대법원장 사이에 있었던 배정현 권한대행 체제가 약 11개월로 가장 길었고 가장 최근인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 사퇴 후 최재호 권한대행 체제는 14일로 마무리됐다.

물론 한 차례 검증해둔 후보군이 있고, 이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이 청문회 직후부터 거론돼 온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미리 생각해둔 후보자를 일찍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음주 후보좌를 발표한다 해도 국회 일정이 변수다. 당장 오는 10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 기간이다. 인사청문위원회를 꾸리는 것도, 인사청문회 일정을 잡는 것도 녹록지 않을 수 있다.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10월 초 후보자 발표-10월 중 인사청문회-10월 말~11월 초 지명이다. 이미 한 차례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점을 고려해 윤 대통령이 여야가 모두 동의할만한 무난한 인물을 지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정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두 번 부결은 야당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부담일 것”이라면서도 “만약 윤 대통령이 다시 이념·성향을 중시해 후보를 정한다면 야당이 다시 부결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백 여파는=당장 문제가 되는 건 법관 인사다.  해마다 2월 20일 전후로 발령이 나는 승진·전보 인사 등 작업을 통상 12월 초에 시작하는데, 인사 원칙 등을 대법원장이 승인해야 그 기준에 맞춰 인사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11월 전에 인사 원칙이 정해져야 하고, 11월이 지나도록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지 못할 경우 전국 법관 3100여명의 인사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이다.

권한대행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지만 새 대법원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광폭의 인사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법원 내 기획 업무 경험이 있는 한 법관은 “대법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행정처 참모진 구성을 비롯해 다양한 인사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는 최소화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이 없이는 전원합의체 선고를 진행하기 어렵다. 대법원장이 공석일 때 전원합의체 판결을 한 사례가 두 차례 있었지만 1970년대의 일이다. 현재 전원합의체에서 논의 중인 사건은 총 5건으로, 이 중 1건이 민유숙 대법관 주심 사건이다. 가장 오래 근무한 고참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전원합의체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 새 주심이 사건을 넘겨받을 경우 그만큼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행정 업무를 떠안게 된 안 대법관의 소부(小部) 사건 등이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안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장) 재임명이 되지 않으면 당장 재판을 못하게 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판받을 권리에 공백이 있어선 안되고, 어려운 사태가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법조계 반응은=두 갈래로 나뉜다. 법관 사회에는 “대법원장이 공석이어도 일선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어서 내년 2월 인사만 제때 할 수만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고등법원 부장판사)이라는 담담한 반응과 “여야가 법원을 정쟁의 제물로 삼은 꼴”(지방법원 부장판사)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진짜 부적절한 인물이라 부결했다기보단 여·야가 법원을 정치공방의 볼모로 삼은 것”이라며 “법관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야당이 윤 정부와 힘겨루기의 결과로 사법부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두번째 후보자도 낙마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내다봤다.

수도권 한 고법판사는 “진짜로 인사를 못하거나 밀리는 상황이 오면, 일단 고법판사 선발이나 부장 승진이 달린 기수의 법관들 반발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전국으로 옮겨다니는 모든 법관이 2월 인사에 맞춰서 전세 계약·자녀 전학 등 일정을 짜놓는데, 이 일정에 변수가 생기면 법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농담처럼 말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니 너무 황당하다”며 “다음 후보자는 좀 빨리 통과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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