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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초사회의 AI와 ‘육각형’ 인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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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23면

트렌드 코리아 2024

트렌드 코리아 2024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 외 지음
미래의창

이 책의 성격은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이 소비 트렌드 전망서가 매년 출간된 지도 올해로 16년째라서다. 최근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안겨준 충격은 이번에 제시한 2024년 열 가지 트렌드에도 나타난다. 세 번째 트렌드 ‘호모 프롬프트’가 그것.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는 시각이기도 하다.

“AI는 프롬프트만큼만 똑똑해질 수 있다”는 말처럼 저자들은 프롬프트, 즉 사용자의 질문·지시에 따라 AI의 답변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예로 드는 것 중 하나가 지난해 미국의 미술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논란이 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은 이 그림을 생성형 AI 미드저니에 900번 넘게 지시어를 입력해 완성했는데, 프롬프트 공개는 거부했다고 한다. 한편에선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등장하고, 특정 프롬프트를 돈으로 사고팔기도 하는 세상이란다.

대표 저자 김난도 교수는 “AI가 기계적인 생산성은 월등히 높여줄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대 수준을 맞추려면 인간의 역할은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서문에 썼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스스로를 볼 줄 아는 능력”이자 인문학적 능력. 출간에 맞춰 5일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그는 “디지털 디바이드가 아날로그 디바이드로 바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육각형인간’의 육각형은 왼쪽처럼 각 축이 꽉 찬 상태를, 즉 ‘완벽’을 뜻한다. [사진 미래의창]

‘육각형인간’의 육각형은 왼쪽처럼 각 축이 꽉 찬 상태를, 즉 ‘완벽’을 뜻한다. [사진 미래의창]

책이 제시하는 2024년 가장 첫 번째 트렌드는 ‘분초사회’. 시간 사용의 효율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세태를 포괄한다. 직장들이 반차를 넘어 반반차·반반반차를 도입하거나, 빠른 재생 속도로 영상 콘텐트를 보는 것 등이 그 예다. 그 이유로는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의 전환, 실시간 버스 위치를 비롯해 분·초 단위로 돌아가는 IT기술, 그리고 ‘봐줘야’ 하는 볼거리의 급증을 꼽는다. 이는 음식점 줄서기 앱의 인기와도 통하는데, 저자들은 빠른 속도를 예찬하지만 않는다. ‘호모 프롬프트’에서 보듯 아날로그적 성찰을 재차 강조한다.

두 번째 트렌드로 제시한 ‘육각형인간’은 여러모로 흥미롭고 논쟁적이다. 이 ‘육각형’은 소셜미디어 같은 데서 종종 쓰인다는 ‘육각형 아이돌’, ‘육각형 운동선수’, ‘육각형 여자’, ‘육각형 남자’ 등과 같은 용법. 대상의 특징을 드러내는 여섯 개 축의 그래프에서 각 기준 축이 모두 꽉 찬 상태를, 즉 ‘완벽’을 뜻한다. 아이돌이라면 노래·춤·연기는 물론 외모·인성·집안도 좋다는 식이다.

과연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를 트렌드에 선정한 것도 마냥 좋은 의미라서는 아니다. 책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육각형인간’을 논하는 양상은 달성하기 힘든 기준을 제시해 ‘담쌓기’를 하고,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요소보다 외모·집안 등 타고나야 하는 요소를 더 높게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수성가한 부자보다 금수저로 태어난 부자를 선망하고, 고진감래의 서사 대신 환생·빙의 등의 서사를 선호하는 것도 언급된다.

그 배경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약화된 것, 그리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남과의 비교가 너무 쉬워진 것 등이 꼽힌다. 그래서 ‘육각형인간’은 완벽한 인간을 추구하는 열정과 긍정의 의미만 아니라 좌절의 표현이자, 일종의 놀이가 되기도 한단다.

이를 포함해 용띠 해 2024년 트렌드 10개의 영어 설명 첫 글자를 모으면 ‘DRAGON EYES’. 단지 ‘용의 눈’이 아니라 ‘화룡점정’이 그 함의다. 화룡점정은 AI시대, 인간의 인문학적 능력을 강조하는 것과도 통한다. 김난도 교수는 진단과 전망을 통해 내놓은 트렌드가 “토정비결이 아니라 체크리스트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비판도 많아졌지만, 각 트렌드가 아우르는 현상이나 이에 대한 설명·분석에서 여전히 번득이는 대목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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