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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수현씨, 엉뚱한 대답…무표정 北선수도 웃음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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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금메달리스트 송국향(가운데), 은메달리스트 정춘희(왼쪽)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수현이 동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장진영 기자

북한 금메달리스트 송국향(가운데), 은메달리스트 정춘희(왼쪽)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수현이 동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간 내내 냉랭한 분위기였던 남북 선수단. 대회 폐막을 앞두고 모처럼 남북간 훈훈한 모습이 연출됐다. 역도 경기에서다.

여자 역도 간판 김수현(28)은 지난 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대회 역도 여자 76㎏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105㎏, 용상 138㎏, 합계 243㎏을 들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 차례 아시안게임 도전 끝에 일군 값진 메달이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개최국 중국의 랴오구이팡은 인상 경기 중 부상으로 기권했다.

3수 끝에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낸 김수현. 연합뉴스

3수 끝에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낸 김수현. 연합뉴스

김수현은 "중국 선수(랴오구이팡)가 용상 경기를 포기한 걸, 처음에 모르고 있었다. 이후에 우리 대표팀 코치님뿐 아니라, 북한 코치님(김춘희)도 '기회가 왔다'고 말씀해주셨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더 정신을 차려서, 마지막까지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수현은 "내가 (북한 역도 영웅) 림정심 언니를 좋아하는데, 북한 코치님이 나를 '금심'이라고 부르신다"고 소개했다. 역도에서만큼은 남북이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림정심은 북한의 역도 영웅이다. 2012 런던올림픽 여자 역도 69㎏급에서 우승했고,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75㎏급 정상에 올랐다. 2019년 파타야 세계선수권에서는 76㎏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 75㎏급 정상에 올랐다.

북한 코치에게 '기회가 왔다'는 응원을 받고 동메달을 딴 김수현. 뉴스1

북한 코치에게 '기회가 왔다'는 응원을 받고 동메달을 딴 김수현. 뉴스1

김수현이 특유의 '유쾌한 성격'으로 기자회견장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북한 선수들의 미소를 끌어내기도 했다. 북한 메달리스트는 이번 대회에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참석해도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떠난다. 김수현은 동메달을 따낸 뒤 기자회견에 참석했는데, 마침 북한 송국향과 정춘희도 동석했다. 이날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인 송국향이 합계 267㎏으로 금메달, 정춘희가 266㎏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송국향은 무표정으로 "오늘의 목표는 이 기록(267㎏)이 아닌 세계 기록(북한 림정심의 278㎏)이었다. 정말 아쉽게 됐다"고 운을 뗀 뒤 "오늘 중국 선수(랴오구이팡)가 이 자리(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부상이 심하지 않은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춘희도 "중국 선수가 오늘 생일인데 축하 인사를 전한다"며 "중국 선수가 빨리 나아서, 실력으로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고 랴오구이팡을 걱정했다.

 평소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김수현.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뉴스1

평소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김수현.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동메달리스트 김수현은 "나는 3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드디어 메달을 땄다. 기분이 좋아서 중국 선수가 다친 것도 몰랐는데…. 중국 선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김수현의 '엉뚱한 대답'에 근엄함 표정으로 일관하던 송국향과 정춘희는 그만 참던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김수현은 이어 "내가 림정심 언니를 좋아한다. 정심 언니보다 더 잘하는 선수 2명과 경기하게 돼 영광"이라며 "목표를 더 크게 잡고, 이 친구들만큼 잘해서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다"고 덕담하자, 북한 선수들은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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