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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여행, 이민자 이야기에 모두 주목하는 까닭” 정이삭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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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이 6일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렸다. 배우 존 조, 저스틴 전 감독, 배우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이 6일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렸다. 배우 존 조, 저스틴 전 감독, 배우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롤모델도 따로 없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ㆍ배우의 1세대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넌 한국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미국에서 자랐지만 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것 같은 어정쩡한 현실에서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아도 되고, 미국인처럼 보이지 않아도 돼"라며 자신을 다잡기도 했다. ‘미나리’의 각본ㆍ연출 정이삭(44) 감독 얘기다.

부산영화제 찾은 존 조, 스티븐 연, 저스틴 전 등 한국계 미국인 배우ㆍ감독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공동연출한 저스틴 전(42) 감독은 “자랄 때 주류 사회가 우리와 연결하려고 하는 일은 없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어떤 콘텐트가 나오는지 백인 동료들이 흥미를 갖고 대화하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저스틴 전 감독은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이라고 하면 다들 LA 살고 할리우드 걸어다니고 할 것 같지만 정이삭 감독님과 이번에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저스틴 전 감독은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이라고 하면 다들 LA 살고 할리우드 걸어다니고 할 것 같지만 정이삭 감독님과 이번에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6일 오후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다. ‘미나리’의 주연 스티븐 연(40)과 ‘서치’의 존 조(51)도 함께 했다.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이름을 알린 네 명의 한국계 미국인 영화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화제는 ‘미나리’ ‘버닝’ ‘콜럼버스’ 등 이들이 연출하거나 출연한 작품 6편을 상영한다.

정이삭 감독은 “우리 모두 롤모델 없이 열심히 작업했다. 미국의 우리 부모님들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뿐더러 우리에게도 ‘영화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예일대 생물학과를 나왔지만 꿈을 버리지 못하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로 2021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미국 제작사에서 미국인이 만든 영화인데도 한국어 대사 비중이 높다고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면서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주최 측에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5일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행사에서 팬들과 만난 배우 존 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5일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행사에서 팬들과 만난 배우 존 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016년에는 해시태그 운동 ‘#존조를 주연으로’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다. 이용자들은 할리우드의 주요영화 포스터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의 얼굴을 합성하며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반발했다. 존 조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건 다 백인인데, 나 같은 얼굴은 어때?’라고, 무거운 질문을 단순한 방식으로 던져봤다”며 배우 초기 캐스팅 과정을 돌아봤다.

그는 “10대 때는 내 정체성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데 고심해야 했다. 부모님과도 나는 달랐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에는 국경이 없다. 국수주의나 애국주의를 초월하는 존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이 관념이 좋다”고 말했다. 존 조는 지난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 『문제아』로 아시아태평양 미국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전날 배우의 영화 인생을 조망하는 행사 ‘액터스 하우스’에서 팬들의 환대를 받은 존 조는 이 책에 대해 “아시아 사람들이 폭력에 노출됐던 팬더믹 상황이 한국 사람들이 피해를 본 1992년 LA 폭동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처음 써 본 중편소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은 SAT에서 만점 받은 한국계 미국 학생 인터뷰를 담은 한인 신문 기사를 모여주며 ‘너는 왜 이렇게 못하냐’ 꾸짖었다. 한국 이민 2세들 대부분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솔직해지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인정한 순간부터 나를 완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5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관객과 만난 저스틴 조 감독은 “지난 10년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왔지만 최근엔 굳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큰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다른 입장이 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뉴스1

5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관객과 만난 저스틴 조 감독은 “지난 10년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왔지만 최근엔 굳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큰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다른 입장이 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뉴스1

이제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이 주연으로 나선 ‘성난 사람들(비프)’가 올해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으로 꼽힌다. 저스틴 전 감독은 “한국 영화는 감정의 차원에서 울림과 공감, 흡입력이 강한 반면 할리우드 영화는 구조나 플롯을 중시하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비프’는 서로 간의 갭을 연결했기에 엄청난 작품이었다”며 “마치 우리 모두를 하나의 그릇에 모은 것 같았다. 동서양의 가치를 모두 보여주며, 동서양 관객을 아울렀다”고 호평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자란 이민자 경험을 이야기하는 나처럼 다른 소수자나 다른 이민자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느낀다”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 정이삭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 정이삭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렇게 이민자 서사가 큰 공감을 얻게 된 까닭을 정이삭 감독은 “삶 자체가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민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에는 ‘상실’이 있다.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가깝지도 않은. 한국에 오면 늘 한강을 지난다. 내 가족들도, 더 윗사람들도 이렇게 한강을 봤겠구나 생각한다.”

미국 배우ㆍ방송인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소속 배우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과 관련해서 말할 수 없게 돼 있다. 노조 규정에 따라 존 조와 스티븐 연은 출연한 미국 작품을 거론할 수 없었다. 스티븐 연은 파업에 대해 “작가나 배우들의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라고, 존 조는 “자동화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듯, AI로 인해 예술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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