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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앞둔 엄마 위해, 아들은 갈비찜을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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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은 위암 말기의 엄마를 위해 정성껏 한 상 차리는 아들 창래(저스틴 전)의 한 해 마지막 날을 담았다. 재미 소설가 이창래의 자전 에세이가 원작이다. “살이 뼈에 붙어 있어야 깊은 맛을 낸다”는 엄마의 갈비찜 레시피가 중심이다. [사진 시네마뉴원]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은 위암 말기의 엄마를 위해 정성껏 한 상 차리는 아들 창래(저스틴 전)의 한 해 마지막 날을 담았다. 재미 소설가 이창래의 자전 에세이가 원작이다. “살이 뼈에 붙어 있어야 깊은 맛을 낸다”는 엄마의 갈비찜 레시피가 중심이다. [사진 시네마뉴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텅 빈 거리를 헐떡이며 달리던 남자가 끝내 오열한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감독 웨인 왕)의 첫 장면이다. 월가의 직장을 그만둔 창래(저스틴 전)는 위암 말기인 엄마(재키 청)를 간병하러 집에 돌아왔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긴 만큼 모자간에는 마음의 골도 깊다. 식사는커녕 걷기도 힘든 엄마는 아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아들은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모른다. 교수인 아버지는 라면도 끓일 줄 모르고, 누나는 한국에서 일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온 식구가 모처럼 모여 저녁을 먹기로 한다. 창래는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한다. 기숙학교 시절 집에 오면 엄마가 차려줬던 밥상을 재현하려는 거다. 칼집을 낸 갈비를 양념에 재운다. 잡채를 볶고, 김치를 썬다. 명태전은 쑥갓잎을, 호박전은 홍고추를 올려 꾸민다. 두 차례 항암 치료에도 암이 전이된 엄마는 치료를 거부한다. 오랜만에 집에 온 누나는 치료를 계속하라고 채근한다. 아시아 이민자 특유의 교육열로 명문 기숙학교와 예일대를 보낸 아들이 소설을 쓰겠다고 안정된 직장까지 그만둔다. 아빠는 영 못마땅하다. 이 가족은 만찬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영화의 원작은 스탠퍼드대 영문과 교수인 이창래(58)가 1995년 ‘뉴요커’에 기고한 동명의 에세이다. 죽어가는 엄마를 위해 요리하던 날을 회고한 글이다. 연출은 역시 아시아계 미국인 웨인 왕(74) 감독이 맡았다. 에세이와 영화에서 엄마에 대한 추억과 회한을 촉발하는 건 음식이다. “살과 뼈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다. 뼈가 깊은 맛을 내니까”라는 엄마의 갈비찜 레시피. 자신과 가족이 누구인지 돌아보게 하는 키워드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은 위암 말기의 엄마를 위해 정성껏 한 상 차리는 아들 창래(저스틴 전)의 한 해 마지막 날을 담았다. 재미 소설가 이창래의 자전 에세이가 원작이다. “살이 뼈에 붙어 있어야 깊은 맛을 낸다”는 엄마의 갈비찜 레시피가 중심이다. [사진 시네마뉴원]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은 위암 말기의 엄마를 위해 정성껏 한 상 차리는 아들 창래(저스틴 전)의 한 해 마지막 날을 담았다. 재미 소설가 이창래의 자전 에세이가 원작이다. “살이 뼈에 붙어 있어야 깊은 맛을 낸다”는 엄마의 갈비찜 레시피가 중심이다. [사진 시네마뉴원]

이창래는 에세이를 쓴 그해 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으로 데뷔했고, 헤밍웨이재단상과 펜문학상을 받았다. 사설탐정 헨리 박이 한국계 거물 정치인의 부정을 조사하며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도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탐정소설 방식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1999년 뉴요커는 ‘21세기 미국 소설가 20인’에, 2000년 뉴욕타임스는 ‘미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한국계 미국인 준이 주인공인 『생존자(The Surrendered)』(2010)는 2011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웨인 왕 감독은 파킨슨병을 앓아온 어머니가 2014년 세상을 떠난 뒤, 오래전 읽은 에세이 ‘커밍 홈 어게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를 임신한 채 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갔고, 또 미국에 이민했다. 2018년 이창래를 만나 영화화를 제안했고, 함께 각색했다.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저스틴 전이 창래를 연기했다.

독립영화처럼 만들었다. 롱테이크로 엿본 한 가족의 집안 풍경이 연극처럼 단조롭게 흘러간다. 유일한 클로즈업 장면은 창래의 요리하는 손.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장면이나 “엄마” “아빠” “창래야” 등 한국말 호칭, 한때 아빠의 불륜을 감지하게 했던 노래인 이문세의 ‘옛사랑’을 엄마가 흥얼거리는 장면, 교회 사람들과 예배보는 모습 등 한국계 이민자 가정의 디테일이 충실하다.

1981년 지인들을 모아 주말마다 촬영한 독립영화 ‘챈이 실종됐다(Chan is Missing)’로 주목받은 웨인 왕의 출세작은 ‘조이 럭 클럽’(1994)이다. 네 명의 중국 출신 여성과 그들이 미국에서 낳은 딸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이 럭 클럽’은 이민자 서사가 부족했던 당시로선 획기적인 영화였다.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샌드라 오(52)는 ‘조이 럭 클럽’을 본 날 “영화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폴 오스터 원작의 ‘스모크’(1995)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으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웨인 왕 감독은 아시아 배우만으로 찍은 로맨틱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이나 올 초 아시아계 배우와 제작자들이 아카데미상을 휩쓴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작품의 시조로도 거론된다. 정작 그는 “아시아계 미국 감독들이 시스템을 벗어나 좀 더 도전적으로 하고 싶은 영화를 찍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커밍 홈 어게인’에서 초창기의 긴 호흡으로 돌아갔다. 2019년 토론토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으니 국내 개봉은 늦은 편이다. 86분.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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