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인터넷ㆍ유튜브의 현재 예견한 디지털의 노스트라다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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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라며 전재산 1만 달러를 털어 산 못생긴 부처로 만든 'TV 부처'가 암스텔담 스테델릭 미술관에 팔린 것을 시작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백남준의 아내 고 구보타 시게코는 돌아봤다. [사진 Peter Moore, courtesy of Barbara Moore]

"생일이라며 전재산 1만 달러를 털어 산 못생긴 부처로 만든 'TV 부처'가 암스텔담 스테델릭 미술관에 팔린 것을 시작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백남준의 아내 고 구보타 시게코는 돌아봤다. [사진 Peter Moore, courtesy of Barbara Moore]

"외국어로 수를 셀 때는 굉장히 집중해야 한다. 자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백남준(1932~2006)이 남긴 글을 배우 스티븐 연(40)이 읽었다. 거기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집에서는 한국어를, 대문 밖에서는 일본어를 써야 했던 어린 백남준이 있었다. 작곡가를 꿈꾸며 유학 간 독일, TV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건너간 미국에서 매일매일의 소통이 가장 큰 문제였던 청년 백남준도 있었다. 20개 국어를 말한다지만 이해받지 못했고, 전 세계를 거침없이 누볐다지만 미국서 관광 비자 신분을 불안해하던 모습도 겹쳐졌다.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감독 어멘다 킴 인터뷰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함께 플럭서스 운동을 했던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백남준의 첫 회고전을 열었던 휘트니 미술관 전 관장 데이비드 로스,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화가 박서보 등 예술적 동지이자 후예들의 인터뷰와 그가 남긴 퍼포먼스 영상과 작품을 107분 분량 영화로 압축했다.

생전엔 한국 출신 전위 예술가의 재미난 기행으로 취급됐다. 이해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다. “이유 있는 실수가 이유 없는 성공보다 낫죠.” 평론가들의 악평이 쏟아지자 백남준이 보인 반응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남겨진 이들은 그의 미래 비전에 새삼 놀란다. 백남준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TV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매체로 바꾸며 민주주의를 말했고, 모든 예술가가 채널이 될 날이 올 거라며 유튜브를 예견했다. 1974년 주창한 전자 정보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 인터넷으로 실현됐다.

TV로 만든 안경을 쓰고 있는 백남준. 기술을 인간화 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사진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V로 만든 안경을 쓰고 있는 백남준. 기술을 인간화 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사진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정보 무당'이자 '디지털의 노스트라다무스', 백남준은 닮은 산만하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그의 삶과 예술을 담은 영화는 올 초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미 공영방송 PBS는 ‘미국의 거장들’ 시리즈에 수록했다. 영화는 마치 생전의 백남준처럼 전 세계를 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ㆍ밴쿠버ㆍ몬트리올ㆍ리스본ㆍ암스테르담ㆍ텔아비브 등지에서 상영됐다. 15일 경기도 고양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사무국에서 만난 어멘다 킴(33·김나정) 감독은 "뉴욕 MoMA나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에서도 특별한 상영회를 가졌다. '잊었던 예술가 꿈을 되살렸다‘는 직장인 관객의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댄스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비디오 아트의 기원을 알게 됐다며 흥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돌아봤다.

첫 장편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로 데뷔한 어멘다 킴(33ㆍ김나정) 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첫 장편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로 데뷔한 어멘다 킴(33ㆍ김나정) 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남준에 관한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떻게 백남준 다큐를 만들게 됐나.  

"나는 뉴욕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다. 백남준은 내가 제일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한국 예술가다. 한국인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허나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6년여 전, 그의 작품 'TV 부처'를 보고 나서다. 우리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연상됐다. 유머가 살아 있었고, 지금의 젊은 예술가가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동시대성이 느껴졌다."

백남준의 'TV 부처', 1974년 제작돼 가장 사랑 받는 시리즈다. [사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백남준의 'TV 부처', 1974년 제작돼 가장 사랑 받는 시리즈다. [사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어려웠던 점은.  

"조사 기간 3년을 포함해서 제작에 5년이 걸렸다. 작품과 자료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사립 탐정이 된 기분으로 여기저기 다녔다. 그는 아주 많은 언어를 구사했고, 말하는 방식도 신비로웠다. 시인이나 부처, 선지자처럼 말하는 천재였다."

뉴스 스타트업 바이스 미디어(Vice Medi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던 그의 백남준에 대한 이해는 저작권자인 백남준의 조카 켄 하쿠다의 지원을 이끌었다.

백남준의 삶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대부분의 사람은 삶을 잘 통제해 나가고 싶어하지 우연ㆍ사고ㆍ실수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백남준은 실수나 모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또한 나 역시 세계 여러 곳을 집이라 여기고, 가끔은 내 집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백남준에 공감했다."

당신에게 비디오 아트란.

"우리가 오늘날 소통하는 방식이다. 영화 제작 기간이 팬더믹과 겹친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조심스러웠다. 줌이나 페이스타임을 활용한 인터뷰를 하면서, 수십 년 전 백남준이 예견했던 '영상을 통해 연결되는 세상'이 이렇게 구현되는구나 싶었다."

“난 아직 할 게 많으니까. 죽는 게 뭐냐 하면, 거기선 미래가 없다는 것”

백남준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기만 하는 미디어 TV를 능동적이고 민주적인 매체로 바꾸고자 했다. [사진 Northwestern University Libraries]

백남준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기만 하는 미디어 TV를 능동적이고 민주적인 매체로 바꾸고자 했다. [사진 Northwestern University Libraries]

영어ㆍ일어ㆍ독일어, 그리고 20세기 초 서울 말씨까지.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하는 백남준의 육성이 경쾌하게 편집돼 흘러간다. "20개 국어를 한다는데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켄 하쿠다의 말에 객석에 웃음이 터졌다.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에 빗대기도 하죠. 가장 학식이 뛰어나고…" 미술사가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스크린 속 백남준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채 엎드려 바닥에 놓인 케이크에 머리를 박았다.

16일 경기도 고양 메가박스 백석벨라시타, DMZ 국제다큐영화제가 열리는 이곳에서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났다. 200여석을 거의 채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 남아 어멘다 킴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감독은 "이 영화를 꼭 한국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만드는 과정이나 영화 자체도 한국인의 뿌리와 다시 연결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 오는 토요일 밤 10시였다.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사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사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온 세상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던 백남준은 2006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아이폰이 출시됐고,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됐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올해 말쯤 극장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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