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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같던 류은희도 울었다…女 핸드볼, 13년 만의 한일전 패배로 銀 획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언니들의 업적을 이어갈 기회를 제가 날려버린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합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에이스 류은희(오른쪽)가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눈물을 훔치며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에이스 류은희(오른쪽)가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눈물을 훔치며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늘 기둥처럼 단단하던 류은희(33·헝가리 교리)마저 끝내 울먹였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일본에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건 뒤였다.

한국은 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저장 공상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일본에 19-29로 완패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전 이후 13년 만의 한일전 패배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여자 핸드볼 아시아 최강국이었다. 여자 핸드볼이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단 한 번만 빼고 모두 우승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만 준결승에서 일본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을 땄다. 당시 일본은 결승에서 중국을 넘지 못해 은메달을 가져갔다.

그 후 한국은 일본에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지난 1년간 아시아 정상 자리를 놓고 접전을 펼치긴 했지만, 결과는 모두 한국의 승리였다. 지난해 12월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연장 승부 끝에 34-29로 이겼다. 올해 8월 파리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결승에서도 한국이 25-24로 이겨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항저우에서도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은 3회 연속 우승을 노렸다. 준결승에서 한국은 중국을 30-23으로 꺾었고, 일본은 카자흐스탄을 40-22로 대파했다. 예상대로 한국과 일본이 결승에 올랐다. 번번이 한국에 금메달을 내줬던 일본은 유니폼까지 새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평소 입던 파란색 대신, 금메달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맞춰 입고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조준했다.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팽팽한 승부가 예상됐다. 그런데 경기는 초반부터 일본 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었다. 한국의 롱슛이 일본 골키퍼 바바 아츠코의 신들린 선방에 번번이 막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류은희조차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7m 스로를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을 정도다.

바바는 키가 1m64㎝로 양국 골키퍼들 중 유일하게 1m70㎝를 넘지 못한 최단신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첫 슈팅 10개 중 8개를 걷어내며 초반 흐름을 장악했다. 그 사이 일본은 주포 이시가와 소라가 연거푸 롱슛으로 골망을 갈라 7-2로 성큼성큼 앞서갔다.

한국은 호시탐탐 슛 기회를 노렸지만, 일본의 촘촘한 수비에 막혀 좀처럼 5점 차를 좁히지 못했다. 류은희가 수비수 둘의 집중 마크를 뚫고 절묘한 롱슛을 꽂아넣어 기세를 올렸지만, 일본은 사하라 나오코와 이시가와의 연속 속공 득점으로 응수했다. 한국은 끝내 8-14로 뒤진 채 전반전을 끝냈다.

한국 여자 핸드볼 에이스 류은희가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득점에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여자 핸드볼 에이스 류은희가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득점에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 후반 시작 후 강경민과 김보은의 연속 골로 다시 10-15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일본은 후반 5분부터 6분 20초까지 순식간에 세 번의 슛을 연거푸 성공시켰다. 스코어가 10-18로 벌어졌다. 반면 한국은 골키퍼와 1대1 찬스에서 시도한 슛이 번번이 골대에 맞고 튕겨 나오는 불운까지 이어졌다.

13-22로 뒤진 후반 19분께 김선화가 시도한 회심의 미들슛은 골키퍼 바바의 발에 맞아 골망을 벗어났다. 한국의 은메달 그리고 일본의 사상 첫 금메달이 사실상 확정된 순간이었다.

류은희는 경기 후 "마음이 너무 안 좋다"며 솟구치는 눈물을 끊임없이 삼켰다.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이기고 싶었다"며 "최고참으로서 내 역할을 잘하려고 항상 최선을 다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계속 삐걱거렸다. 잔실수가 너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열아홉 막내 김민서는 "다음 번엔 한일전을 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치를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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