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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6) 술취한 척 장합을 무찌른 장비, 천탕산을 차지한 노장 황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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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이 말렸으나 장합은 3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장비를 잡으러 파서로 진군했습니다. 장비는 뇌동을 매복시키고 자신은 직접 장합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장비가 장합과 30여 합을 겨뤘을 때 뇌동이 장합의 후군을 덮쳤습니다. 장합은 장비의 협공에 전의를 잃고 크게 패했습니다. 이후로 탕거산에 웅거한 채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게 50여 일을 대치했습니다. 이에 장비가 작전을 바꿨습니다. 매일 산 밑에서 술을 마시면서 잔뜩 취하여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유비가 이를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이 웃으며 유비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렇습니까? 군중에는 아마 좋은 술이 없을 것입니다. 성도(成都)에는 좋은 술이 무척 많으니 50동이만 실어다 주고 장장군에게 마시라고 이르소서.

내 아우가 전부터 술만 마시면 실수를 하는데 군사는 어째서 도리어 그에게 술을 보내주라고 하는가?

주공께서는 장비와 그 많은 세월을 형제로 지내셨으면서 아직 그의 사람됨을 모르십니까? 그는 전에는 억세고 거칠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서천을 거둬들일 때 엄안을 의롭게 놓아준 것을 보소서. 그것은 한갓 용부(勇夫)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장합과 50여 일을 대치하면서 술에 취하여 산 밑으로 나가 앉아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술을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장합을 무찌르려는 계책입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주의해서는 안 될 것이니 위연을 보내 도와주라고 하오.

장비는 유비가 내린 ‘군중에서 공무로 쓸 좋은 술’을 받고는 위연과 뇌동에게 좌우를 맡도록 하고 다시 술을 마시며 씨름을 즐겼습니다. 장합은 장비가 자신을 너무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고는 그날 밤 산에서 내려와 장비군을 야습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장합이 멀리서 보니 장비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곧장 돌격하여 단창에 장비를 찔러 거꾸러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비가 아닌 허수아비였습니다. 장합이 속은 것을 알고 말고삐를 당겨 돌아가려고 할 때, 연주포 소리와 함께 장비가 나타났습니다. 두 장수는 4~50여 합을 싸웠습니다. 장합은 구원병이 올 것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구원군은 이미 위연과 뇌동에게 제압당했기 때문입니다. 장합은 세 개의 영채를 모두 잃고 와구관(瓦口關)으로 도망쳤습니다. 유비는 뒤늦게 장비의 계책을 알고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허수아비 덫에 걸린 장합을 공격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허수아비 덫에 걸린 장합을 공격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홍은 장합이 군사를 잃고 와구관으로 도망가서 다시 지원병을 요청하자 크게 화를 내고는 지원병 없이 싸우라고 독촉했습니다. 장합은 매복작전으로 뇌동을 죽였습니다. 장비도 유인해서 잡기로 했지만 이에 속을 장비가 아닙니다. 장비는 장합의 작전을 역이용하여 위연으로 하여금 매복군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장합을 무찔렀습니다. 장비는 여세를 타고 한중의 백성들에게 길을 물어 와구관까지 들이치자 장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남정에 둔치고 있는 조홍에게로 도망쳤습니다. 이때 장합을 따라온 병사는 10여 명뿐이었습니다. 조홍은 군령장까지 쓴 장합의 목을 베고 싶었지만 부하들의 만류로 참았습니다. 대신 5천 명의 군사를 주어 가맹관(葭萌關)을 뺏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가맹관은 맹달과 곽준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맹달이 장합과 겨뤄 크게 패했습니다. 급보를 받은 제갈량은 장비를 보내고 싶어 했지만 지원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됐습니다. 노장 황충이 지원을 나섰습니다. 제갈량은 격장계(激奬計)가 필요한 것을 알고는 연로함을 이유로 적수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황충이 흰 수염을 곤두세우고 반론을 폈습니다.

내가 비록 늙었지만 두 팔에는 아직도 삼석궁(三石弓)을 당길만한 힘이 있고, 몸에는 아직 1천근을 들 수 있는 힘이 있소. 어찌 하찮은 장합 따위를 대적하지 못하겠소?

장군이 가시겠다면 누구를 부장(副將)으로 삼겠소이까?

노장 엄안과 가고 싶소. 그리고 실수를 한다면 먼저 이 늙은이의 목을 바치겠소.

유비는 두 노장이 장합을 물리치도록 했습니다. 조운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두 사람이 한중을 얻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조운 등 여러 장수가 비웃었습니다. 황충과 엄안이 가맹관에 도착하자, 맹달과 곽준도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제갈량의 인력배치도 나무랐습니다. 이를 안 황충이 엄안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여러 사람의 동태를 보았소? 그들은 우리가 늙었다고 비웃고 있소이다. 이제 어기찬 공을 세워 그들의 코가 납작해지게 만들어야만 하겠소.

장군의 명령대로 따르겠소이다.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합도 황충을 보자 웃으면서 지껄였습니다.

너는 그 많은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직도 싸우러 나오느냐?

너 같은 잔챙이가 내 나이가 많다고 깔보는 것이냐? 내 손의 칼은 아직 늙지 않았다

황충이 말을 달려 장합과 싸우길 20여 합. 갑자기 장합의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습니다. 엄안이 샛길로 장합군의 뒤로 돌아가 협공한 것입니다. 장합은 크게 패해 군사를 90리나 후퇴시켰습니다. 조홍은 하후상과 한호를 보냈습니다. 한호는 장사태수 한현의 아우로 황충과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황충과 엄안은 작전을 짜고 싸움터로 나갔습니다. 황충은 두 장수와 싸우다 퇴각하여 영채까지 빼앗겼습니다. 다음 날도 패하여 20여 리를 후퇴하고 영채도 빼앗겼습니다. 장합이 황충의 계략임을 느끼고 하후상에게 말했으나 오히려 꾸짖음만 들었습니다. 다음날도 황충은 또 패하여 20여 리를 퇴각하고 또 영채를 빼앗겼습니다. 드디어 관문까지 쫓겨 왔습니다. 맹달이 유비에게 몰래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유비가 놀라 제갈량에게 묻자 제갈량은 황충의 생각을 간파하고 유비에게 적들이 교만한 생각을 갖게 하는 노장의 계책이라고 했습니다. 조운은 믿지 않았고 유비도 불안했습니다. 유봉을 보내 지원토록 했습니다.

소장군(少將軍)은 어째서 도와주러 오셨는가?

아버님께서 장군이 여러 번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저를 보냈습니다.

하하하. 그것은 노부의 계책이오. 오늘밤 한판 싸움으로 여러 영채를 모두 수복하고 그들의 군량과 말들을 모조리 빼앗을 테니 두고 보시오. 이제껏 패한 것은 저들에게 영채를 빌려주어 군량과 마초(馬草) 등을 쌓아두게 하려는 것이었소. 오늘 밤 곽준은 관을 지키고, 맹장군은 나와 함께 다시 찾으러 가십시다. 소장군은 내가 적을 무찌르는 것이나 보고 계시오.

엄안. 출처=예슝(葉雄) 화백

엄안. 출처=예슝(葉雄) 화백

황충은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밤중에 영채를 기습했습니다. 하후상과 한호는 느긋하게 있다가 갑옷을 입을 틈도 없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먼동이 틀 무렵, 연달아 세 영채를 되찾고 군마와 무기 등도 빼앗았습니다. 황충은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겠냐?’면서 군사를 전진시켰습니다. 황충과 엄안은 한호와 하후덕을 베고 군량미를 보관하던 천탕산을 빼앗았습니다. 유비는 황충과 엄안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지난날 조조가 장로의 항복을 받고 한중을 평정한 뒤 그 기세를 몰아 파촉(巴蜀)을 도모하지 않고 하후연과 장합에게 남아 지키게 하며 직접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돌아갔는데, 그것이 실책이었습니다. 이제 장합이 패했고 천탕산을 잃었으니 주공께서 만약 이러한 기회를 타고 대군을 일으켜 직접 정벌에 나서시면 한중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한중을 평정한 뒤에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비축하며 틈을 노려 진격한다면 역적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고, 물러나면 자신을 지킬 수 있을 터이니 이것은 하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잃어서는 안 됩니다.

법정은 황충과 엄안이 천탕산을 차지하자 유비에게 한중을 차지할 기회가 왔음을 밝혔습니다. 유비와 제갈량은 모두 깊이 찬성했습니다. 드디어 조운과 장비를 선봉으로 삼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도모하기 위해 가맹관을 나섰습니다. 이제 조조와 유비의 한중쟁탈전이 일촉즉발(一觸卽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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