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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5) 관로의 신묘한 점복에 감탄을 금치 못한 조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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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좌자의 도술에 놀라 기절했다 깨어나자 광풍도 시체들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조조는 이날 이후로 앓아누웠습니다. 백약이 무효인지라 차도가 없었습니다. 태자승(太子丞) 허지가 조조를 찾아오자 조조는 허지에게 주역 점을 쳐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허지는 관로를 추천했습니다. 관로는 ‘귀신같은 점쟁이’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조안 부자의 간곡한 사정에 살 길을 알려주는 좌자.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안 부자의 간곡한 사정에 살 길을 알려주는 좌자. 출처=예슝(葉雄) 화백

관로는 얼굴이 못생기고 술을 좋아했습니다. 행동도 거칠고 난잡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현령을 지냈지만 관로는 학업보다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지냈습니다. 아이들과 놀면서도 땅바닥에 천문(天文)을 그리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배치했습니다. 부모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의 닭이나 들녘의 고니도 울어야 할 때와 날아가야 할 때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그때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드디어 관로는 주역의 이치를 깊고 밝게 터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문·지리·풍각(風角) 등 술수에 능통했고 관상도 잘 보았습니다. 낭야태수 단자춘이 소문을 듣고 관로를 불렀습니다. 백여 명의 빈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밤새워 주역의 이치를 담론했습니다. 관로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때부터 관로는 신동(神童)으로 불렸습니다.

관로의 신복(神卜)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중에서도 19살이 되어 곧 죽을 조안의 운명을 99세로 늘려준 일은 천기(天機)조차도 아는 관로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관로는 이후로 천기누설하지 않기 위해 가벼이 점을 쳐주지 않았습니다. 이때 조조가 관로를 부른 것입니다.

좌자의 여러 가지 현상은 눈속임일 뿐입니다. 무엇하러 걱정하십니까?

조조는 관로의 이 말에 마음을 편안하게 먹자 병도 금방 나았습니다. 조조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관로가 몇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삼팔(三八)이 종횡하고 누런 돼지가 범을 만나면 정군(定軍)남쪽에서 한 다리가 부러집니다.

사자궁에 신위(神位)를 봉안하니 왕조가 바뀌고 자손들이 극히 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신하로서 더 올라갈 수 없는 자리에 계시는데 관상은 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신하들도 모두 태평성대를 누릴 것입니다.

조조는 관로를 태사(太史)로 삼으려고 했지만 관로가 사양했습니다. 그 까닭을 묻자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이마에는 주골(主骨)이 없고, 눈에는 수정(守精)이 없으며, 코에는 양주(梁柱)가 없고, 다리에는 천근(天根)이 없으며, 등에는 삼갑(三甲)이 없고 배에는 삼임(三壬)이 없으니 태산(泰山)의 귀신은 다스릴 수 있지만 산 사람은 다스릴 수 없습니다.

조조가 동오와 서촉에 대해 점을 쳐보게 하자, 동오는 대장 한 명이 죽었고, 서촉은 병사들이 경계를 침범했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방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동오의 장수인 노숙이 죽고, 유비가 장비와 마초를 한중으로 보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조는 즉시 한중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관로가 말렸습니다.

대왕!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내년 봄 허도에는 반드시 화재가 일어날 것입니다.

조조는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고 조홍에게 5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하후연과 장합을 도와 지키게 했습니다. 하후돈에게는 3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로 가서 순찰을 하며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장사(長史) 왕필에게 어림군마(御林軍馬)를 총괄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마의가 말렸습니다.

왕필은 술을 좋아하고 성질이 눅어서 아마 그 직책을 감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필은 가시밭길을 헤치며 어려움을 겪을 때부터 나를 따르던 사람이다. 충직하고 또한 근면하며 마음이 철석같으니 가장 적합할 것이다.

허도의 승상부의 시중(侍中)인 경기는 천자처럼 행세하는 조조가 미웠습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위황과 함께 조조를 처단하고자 했습니다. 위황이 김의를 추천하여 세 사람이 뭉쳤습니다. 김의는 왕필을 죽이고 황제를 보호하면서 유비와 결탁하여 싸운다면 조조를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태의(太醫) 길평의 두 아들도 참여했습니다. 거사일은 정월 대보름 밤으로 정했습니다.

드디어 정월 대보름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새해 분위기에 취할 즈음, 궁에서 불길이 높이 솟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왕필은 김의와 경기 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알고 조휴와 하후돈에게 알렸습니다. 경기와 위황은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반란은 수습되고 불길도 잡혔습니다. 김의와 길막 형제는 이미 피살되었고, 경기와 위황은 저잣거리에서 효수되었습니다. 모종강은 이들이 한 거사가 실패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평했습니다.

‘김의가 만약 유비와 먼저 약속을 하고 조조가 한중을 구하러 나간 뒤에 거사를 했다면, 유비는 밖에서 쳐들어오고 김의는 안에서 기병하여 거사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애석하다. 그 일을 너무 급하게 몰아쳤구나!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일의 성패는 족히 의논할 것이 못된다. 그들은 정말 충의로운 간담으로 후토(后土)에 답하고 황천에 고했으니 어찌 다섯 명의 훌륭한 사람이 세 호걸과 다르겠는가. 경기와 위황 등 다섯 사람 집안의 하인들을 보면 동승이 이 다섯 사람만 못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동승의 사건을 보면 진경동이란 하인이 일러바쳤는데, 이 다섯 사람 집안의 하인 7백여 명 중 그 사실을 누설시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가. 다섯 사람 집안의 훌륭한 하인들을 보면 다섯 사람의 훌륭함을 더욱 믿게 된다.’

조조는 경기와 위황이 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나와서 불을 끈 사람과 끄지 않은 사람을 나눠 세웠습니다. 관리들은 죄가 두려워 2/3가 불을 끈 쪽으로 섰습니다. 조조는 이들을 몽땅 처형하고 나머지 관리들에게는 상을 주었습니다. 조조는 불을 껐다고 하는 자들은 실은 역적들을 도우려고 나갔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허도의 불을 끈 자와 안 끈 자로 구분하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허도의 불을 끈 자와 안 끈 자로 구분하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편, 한중에 도착한 조홍은 마초가 싸우러 나오지 않자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여기고 군사를 진군시키지 않았습니다. 장합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자 마초의 계략이 있을 것이고, 관로의 점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합이 말했습니다.

장군께서는 반평생을 싸움터에서 보내셨습니다. 이제 와서 점쟁이의 말을 믿고 마음을 빼앗기십니까? 제가 비록 재주는 없지만 부하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파서를 빼앗겠습니다. 만일 파서를 얻는다면 촉군(蜀郡)은 쉬울 것입니다.

파서를 지키는 장비는 보통 장수가 아니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될 것일세.

남들은 모두 장비를 무서워하지만 저는 어린애처럼 볼 뿐입니다. 이번에 가서 꼭 잡겠습니다.

만약 실수가 있으면 어쩌겠는가?

군령을 달게 받겠습니다.

장합.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합.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합은 군령장을 쓰고 군사를 이끌고 전진했습니다. 상대를 깔보고 교만함에 가득 찬 자 치고 성공한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하매 장합이 장비에게 어떤 혼쭐이 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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