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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7) 득롱망촉(得隴望蜀), 후회하는 조조와 기뻐하는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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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였습니다. 조조의 중요거점인 정군산(定軍山)을 공격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였습니다. 황충이 다시 자청했습니다. 제갈량은 법정과 상의하면서 싸울 것을 지시했습니다. 장비와 마초, 조운과 유봉 등 여러 장수에게도 별도의 군사를 주어 지원토록 했습니다.

조조는 천탕산을 빼앗겼다는 보고를 받고는 매우 놀라 군사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장사(長史) 유엽이 한중을 잃으면 안 되니 직접 정벌에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장로를 무찌르고 한중을 차지했을 때 서천까지 진격하여 유비를 쳐부숴야 한다고 간언했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40만 군사를 동원하여 한중으로 출군하였습니다.

조조가 동관(潼關)을 거쳐 남전(藍田)에 이르렀을 때 채염을 만났습니다. 채염은 조조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 학자 채옹의 딸입니다. 그녀는 전란으로 인해 남흉노 좌현왕(左賢王)에게 납치되어 그의 아내로 살면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조조는 채옹에게 후사가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흉노에게 금은보화를 주고 그녀를 데려와 재혼시켜 주었습니다. 그녀는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누렸으나 한편으로는 두 아들과 애끊는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때의 심정을 읊은 비분시(悲憤詩) 2수가 있고, 난리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도 유명합니다.

조조가 채염의 집 벽에서 비문을 보다가 부친이 썼다는 여덟 글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채염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여덟 글자는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虀臼)’였습니다. 조조는 여러 모사에게 보여주며 그 뜻을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대답하지 못할 때 주부(主簿) 양수만이 뜻을 안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자신도 생각해 볼 터이니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조조가 채염과 작별하고 3리쯤 간 후에 그 뜻을 깨닫고 양수에게 뜻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양수. 출처=예슝(葉雄) 화백

양수.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것은 은어(隱語)입니다. 황견(黃絹)은 바로 빛깔 있는 실이니, 실(系) 옆에 빛깔(色)을 붙이면 절(絶)자가 되고, 유부(幼婦)는 젊은 여자이니 여자(女) 옆에 젊음(少)을 붙이면 묘(妙)자가 되고, 외손(外孫)은 딸의 아들이니 딸(女) 옆에 아들(子)을 붙이면 호(好)자가 되고, 제구(虀臼)는 다섯 가지 양념(辛)을 받아들이는(受) 그릇이니 받아들임(受) 옆에 양념(辛)을 붙이면 사(辭)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 여덟 글자는 바로 ‘절묘호사(絶妙好辭)’라고 쓴 것으로 더없이 훌륭한 문장이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과 똑같구나!

조조가 도착하자 장합은 이제까지의 일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조조는 전쟁터에서의 승패는 늘 생기는 일이라며 용서했습니다. 황충이 정군산을 공격하자 하후연은 지키기만 하였습니다, 조조가 이를 알고는 편지 한 통과 함께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말고 진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하후연의 성격이 너무 굳고 고집이 세어서 간사한 계략에 말려들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인데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무릇 장수란 강하고 부드러움을 알맞게 조화시켜야 한다. 쓸데없이 자신의 용기만 믿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용기만 믿는다면 그것은 한 사내의 적수일 뿐이다. 내가 이제 대군을 남정에 둔치고 경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 싶으니 ‘욕되게 하지 말라(勿辱)’는 두 글자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후연의 조조의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장합과 출전을 논의했습니다. 장합은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되고 굳게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후연은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후상이 선봉으로 나가 황충의 아장(牙將)인 진식을 사로잡았습니다. 법정은 반객위주계(反客爲主計)를 쓰기로 하고 가는 곳마다 영채를 세우고 며칠 머무른 다음 다시 영채를 거두어 전진했습니다. 장합이 법정을 계략을 알고 하후연을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후상이 다시 출전했지만 황충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진식과 하후상을 맞바꾸기로 하고 서로를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황충은 하후상이 자신의 진문(陣門)에 도달할 즈음, 활을 쏘아 등을 맞혔습니다. 하후연을 자극하여 무찌르려고 쏜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한 하후연이 쏜살같이 말을 몰고 황충에게 달려왔습니다. 두 장수가 맞붙어 20여 합을 싸울 때 조조 군영에서 징소리가 울렸습니다. 산속에 유비군의 매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황충은 이 틈을 타고 한바탕 하후연의 군사를 무찔렀습니다. 하후연은 이제 출전하지 않고 굳게 지키기만 했습니다. 법정은 황충에게 정군산보다 높은 서쪽을 빼앗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하후연 진영의 허실을 시시각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장군은 산 중턱으로 내려가 지키고 계시오. 내가 산마루에 있다가 하후연의 군사가 쳐들어오면 신호를 하겠소. 흰 깃발을 들어 신호하거든 장군은 군사를 눌러둔 채 움직이지 마시고 저들이 권태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시오. 저들이 방비를 느슨하게 할 때 내가 붉은 깃발을 들어 신호할 테니, 장군은 즉시 산을 내려가 공격하시오. 편안하게 앉아서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오.

하후연은 법정을 계략대로 싸우려고만 했습니다. 장합이 계속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하후연의 군사들은 공격하다 지쳤습니다. 느슨해져 쉬고 있을 때 붉은 깃발이 흔들렸습니다. 황충은 즉시 북과 피리를 울리며 함성과 함께 산을 내려가 공격했습니다. 하후연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미처 싸울 준비도 하기 전에 황충의 칼이 하후연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조조군은 크게 무너지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장합이 싸우러 나왔지만 조운이 나섰습니다. 그 사이에 정군산도 빼앗겼습니다. 장합은 패잔군을 이끌고 한수(漢水)로 와서 영채를 세우고 조조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조조는 크게 통곡하고 관로가 말한 것이 떠올라 그를 다시 찾았지만 더 이상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노장 황충의 칼에 죽는 하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노장 황충의 칼에 죽는 하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하후연의 원수를 갚아야만 했습니다. 제갈량은 장합을 무찌르기 위해 황충과 조운을 보냈습니다. 황충과 조운은 선후로 공격하기로 정하고 먼저 황충이 나섰습니다. 조조는 서황과 문빙을 내보내 황충과 싸우게 했습니다. 황충이 곤경에 쳐했을 때 조운이 지원을 나섰습니다. 조운은 무인지경을 달리듯 좌충우돌했습니다. 그의 창은 몸과 함께 춤추는 것 같았고, 온몸에서는 분분히 눈발이 흩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조조군은 몹시 놀라고 무서워 감히 맞서 싸우지 못했습니다. 조운이 황충을 구하자 조조는 장판파의 영웅이 아직도 건재함을 알고는 가벼이 대적하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조운이 장저마저 구해내자 조조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조운의 영채까지 추격했습니다. 조운은 즉시 영채 문을 열라고 하고, 궁노수들을 영채 밖 참호 속에 매복시켰습니다. 깃발과 창도 모두 감추고 북과 징도 못 치게 했습니다. 조운이 홀로 영문 밖에서 말에 앉아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조조군은 감히 진격하지 못하고 있을 때 조조가 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궁노수들이 쏜 화살에 놀라고 뒤편에서의 함성에 놀라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유비는 조운이야말로 온몸이 전부 담 덩어리라고 칭찬했습니다. 조운을 호위장군(虎威將軍)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이에 후세의 사람들이 조운을 기리는 시를 지었습니다.

지난날 장판에서 떨쳤던 용맹함 昔日戰場坂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으니 威風猶未減
돌격하면 영웅의 풍모를 과시하고 突進顯英雄
포위돼도 용감함 그 자체네 被圍施勇敢
귀신도 무서워 울고 鬼哭與神號
천지도 놀라서 어두워지니 天驚幷地慘
그 이름 상산의 조자룡 常山趙子龍
온몸이 담 덩어리로 뭉친 장수 一身都是膽

홀로 창 한 자루를 들고 영채를 지키는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홀로 창 한 자루를 들고 영채를 지키는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도 조운이 조조군을 물리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찬했습니다.

‘조운은 혼자서 뒤쫓아 온 조조의 많은 군사를 맞고 있다. 만일 영채 문을 닫고 지키려 했다면 반드시 죽었을 것이고,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해도 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채를 버리지도 않고, 영채 문을 닫지도 않고, 깃발을 숨긴 채 북소리도 내지 않고, 밖에 말을 멈추고 서서 의병(疑兵)으로 조조를 물리친 것이다. 담으로 뭉쳐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지혜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만일 담이 컸던 것뿐이라면 그야말로 대담했던 강유가 어찌 번번이 등애에게 패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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