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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8)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그 또한 아깝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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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황충과 조운의 승전으로 한중을 차지하는데 더없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유비가 한수(漢水)가에 이르자 조조는 서황과 왕평을 보냈습니다. 왕평은 서황이 강을 넘어가려 하자 극구 말렸습니다. 서황은 듣지 않고 강을 건너 영채를 세웠습니다.

지금 서황은 용기만 믿고 왔네. 우선 그와 맞서지 말고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고 군사들이 지치거든 우리 둘이 군사를 나누어 양쪽에서 들이치기로 하세.

이번에도 황충과 조운이 나섰습니다. 결국 계획대로 협공하여 서황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서황은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왕평에게 구원하지 않은 것을 추궁했습니다. 왕평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패한 것이라고 하자 화가 난 서황이 왕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왕평은 그날 밤으로 군영에 불을 질렀습니다. 서황은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고 왕평은 한수를 건너 조운에게 투항했습니다. 싸움에 진 서황은 조조에게 돌아와서 보고했습니다.

서황. 출처=예슝(葉雄) 화백

서황.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평이 배반하고 유비에게로 가서 항복했습니다.

조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한수를 가운데 두고 마주 군영을 세웠습니다. 한바탕 설전이 벌어진 후 조조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유비를 잡는 사람을 서천의 주인으로 삼겠다!

하지만 제갈량의 의병계(疑兵計)에 속아 유비를 잡기는커녕 남정마저 잃고 양평관으로 후퇴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장비와 위연을 시켜 조조의 군량 수송로를 끊도록 하고, 황충과 조운에게는 불을 질러 산을 태우라고 했습니다. 양평관으로 물러난 조조는 형편이 외롭게 됐습니다. 허저로 하여금 군량과 말먹이를 보호하도록 했지만 술에 취해 장비에게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몇 번의 전투에서 패한 조조는 양평관을 버리고 야곡 어귀로 도망쳤습니다. 조창이 군사를 거느리고 마중 나와 그나마 조조의 걱정을 덜어주었습니다.

조조는 결국 한중을 포기하고 퇴각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내린 암호가 ‘계륵(鷄肋)’이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받은 장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주부인 양수가 조조의 뜻을 알아차리고 군사들에게 행장을 꾸려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일렀습니다.

‘계륵’이란 암호를 듣고 철군 채비를 하는 양수. 출처=예슝(葉雄) 화백

‘계륵’이란 암호를 듣고 철군 채비를 하는 양수. 출처=예슝(葉雄) 화백

닭갈비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려고 하면 버리기도 아깝습니다. 이제 나아가도 이길 수 없고 물러나도 비웃음거리만 될 지경이니 더 이상 있어 보았자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내일 위왕께서 틀림없이 철군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

매번 양수에게 자기 생각이 들통 난 조조는 하후돈에게서 이 말을 듣고는 더욱 불쾌했습니다. 결국 군대를 소란하게 어지럽혔다는 죄명을 씌워 양수의 목을 베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양수를 탄식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하우돈. 출처=예슝(葉雄) 화백

하우돈. 출처=예슝(葉雄) 화백

총명했던 양수는 聰明楊德祖
집안 대대로 명문 가문으로 世代繼簪纓
붓을 들면 용이 나는 듯했고 筆下龍蛇走
가슴속 재주는 비단처럼 화려했네. 胸中錦繡成
하는 말마다 온 좌중이 놀라고 開談驚四座
민첩한 대답은 영재 중에도 최고였네. 捷對冠群英
목숨이 다한 것은 재주 잘못 부린 탓. 身死因才誤
철군함을 안 것과는 상관없다네. 非關欲退兵

모종강은 양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공융, 순욱, 양수는 모두 조조의 뜻을 거슬러 죽었다. 그러나 양수는 공융만 못했고, 순욱만도 못했다. 어째서인가? 공융은 조조를 섬기지도 않았고 정직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고, 순욱은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섬기다가 뒤에 와서 정직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며, 양수는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섬기다가 또한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거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양수는 양표의 아들로 몸을 굽혀 조조를 섬겼으니 이미 가문을 부끄럽게 했고, 다시 조식의 문제로 조조의 의심까지 샀으며, 또한 남의 형제 사이에서 처신을 잘하지 못했다. 만일 정직하게 조조를 거슬렀다면 죄가 조조에게 있겠지만, 정직하지 못하게 조조를 거슬렀다면 그 죄는 양수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수의 죽음을 놓고 식자들은 조조를 나무라지 않는다.

또한, 혹자들은 조조가 양수의 재주를 시샘하여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선비의 재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모사의 재주이고, 하나는 문사의 재주이다. 모사의 재주로 조조에게 등용된 사람은 곽가·정욱·순욱·순유·가후·유염이 그들이고, 문사의 재주로 조조에게 등용된 사람은 양수·진림·왕찬·완우가 그들이다. 문사의 재주는 모사의 재주처럼 샘내거나 싫어할 것이 못된다.

조조가 순욱을 싫어한 것은 구석(九錫)을 받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기 때문일 뿐, 전에는 순욱을 싫어한 적이 없다. 다른 모사들도 역시 한 번도 기피 대상이 된 적이 없다. 그가 모사의 재주를 보는 것도 이러한데, 하물며 어찌 문사의 재주를 시샘하여 죽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욕한 진림도 벌을 주지 않았다. 대개 조조 자신을 위해 재주를 쓰지 않으면 싫어했고, 자신을 위해 재주를 쓰면 싫어하지 않았다. 양수가 조식의 당으로 조조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면 조조는 성내지 않았을 것이고, 양수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조조가 양수의 재주를 시샘하여 죽였다는 말은 적절치 못한 주장이다.’

조조는 방덕의 보호로 목숨을 건지고 양수의 예상대로 한중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조조에게 한중을 잃은 것은 커다란 손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모종강은 조조가 한중을 빼앗긴 것이나 유비가 서주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했습니다.

‘조조가 한중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은, 유비가 서주를 지킬 수 없었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조조가 이미 연주를 차지했다면 서주는 조조가 꼭 빼앗아야 할 땅이고, 유비가 이미 서천을 차지했다면 한중 역시 유비가 꼭 빼앗아야만 할 땅이다. 내 침상 옆에서 어찌 다른 사람이 코를 골며 자도록 놓아둘 수가 있겠는가. 조조가 아무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생스럽게 왔다고 해도 유비와 이 땅을 놓고 다투어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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