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술술 읽는 삼국지](79) 개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관우, 오호장(五虎將)된 황충에 분노하다

중앙일보

입력

술술 읽는 삼국지’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조조는 한중에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군사를 야곡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제갈량은 조조가 한중을 버리고 달아날 것을 예상하고 장수들을 10여 곳의 요충지에 보내서 불시에 습격하게 하였습니다. 조조군은 전의를 잃고 싸울 힘조차 없었습니다. 조조는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장안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 줄줄이 투항했습니다. 유비는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군사들에게는 큰 상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이 유비를 황제로 추대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제갈량과 법정이 유비에게 청원했습니다.

지금 조조가 국권을 독단하고 있어 백성들은 주인을 잃고 허둥거리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천하가 다 알다시피 어질고 의로우실 뿐 아니라, 이제 이미 양천(兩川)의 땅을 다스리고 계시니 천명(天命)을 따르고 인망(人望)에 순응하여 황제로 즉위하소서. 그래야 명분도 바로 서고 말도 이치에 맞습니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늦출 수 없으니 제발 즉시 날을 받으십시오.

군사! 그런 말 마시오. 유비가 비록 한나라의 종친이기는 하나 바로 신하된 사람이오. 만일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한나라에 반역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천하는 갈라지고 영웅은 다투어 일어나 각자가 한쪽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재주 있고 덕망 있는 인사들이 목숨을 걸고 주인을 섬기는 것은, 모두 명철한 군주에게 복종하여 공명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지금 주공께서 혐의를 피하여 의리만 지키려 하신다면, 아마도 뭇 사람은 희망을 잃게 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익히 유념하십시오.

나에게 참람히 제위로 나가라는 것이라면 나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소. 좋은 방도를 다시 상의해 봅시다.

유비가 거부하자 제갈량은 한중왕(漢中王)에라도 올라야 한다고 진언했습니다. 유비는 천자의 명을 받지 못한다면 참칭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은 난세에는 평상시의 예법대로 할 수 없으니 권도(權道)를 따라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장비가 그답게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성이 다른 사람도 모두 임금이 되려고 하는 판에 형님은 바로 한황실의 종파시니 한중왕이라고 할 것 없이 곧바로 황제를 칭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무엇이오?

한중왕에 오르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중왕에 오르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는 재삼 사양하다가 결국 한중왕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219년 음력 7월. 드디어 유비는 한중왕이 되었습니다. 아들 유선을 왕세자로 세우고, 허정을 태부로 삼았습니다. 제갈량은 군사가 되었고, 관우·장비·조운·마초·황충은 오호대장에, 위연은 한중태수에 임명되었습니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돗자리나 짜던 하찮은 놈이 감히 왕이 되었다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이어 곧바로 한중을 공격하여 유비를 처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사마의가 수고롭게 나설 필요 없이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을 내었습니다.

오호대장이 된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오호대장이 된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동의 손권이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냈다가 다시 몰래 데려갔고, 유비가 또 형주를 점거한 채 돌려주지 않자 피차가 원망하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제 한 능변가에게 편지를 가지고 동오로 가서 손권을 달래라고 하십시오. 군사를 일으켜 형주를 빼앗게 하면 유비는 반드시 양천의 군사를 몰고 나와 형주를 구하려고 할 터이니, 그때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한중을 공격하시면 유비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원할 수 없게 되어 반드시 위태로운 형편에 빠질 것입니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만총을 사자로 삼아 손권에게 보냈습니다. 손권은 참모들과 만총이 사자로 오는 것에 대해 상의했습니다. 그 결과, 위와 오는 원수진 일이 없으니 분명 강화(講和)를 맺으러 오는 것일 것임을 알았습니다. 손권은 조조의 뜻에 호응하기로 했습니다. 후속 조치를 논의할 때, 제갈근이 의견을 냈습니다.

제가 듣자니 관우는 형주로 온 뒤 유비가 아내를 얻어 주어 먼저 아들을 낳고 다음에 딸을 낳았다고 하는데, 그 딸이 아직 어려 정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가서 주공의 세자와 혼인을 하자고 청하겠습니다. 만일 관우가 기꺼이 허락한다면 즉시 그와 대책을 의논해 함께 조조를 무찌르고, 만일 그가 내키지 않아 한다면 조조를 도와 형주를 뺏으십시오.

제갈근이 다시 형주로 가서 관우를 만났습니다. 예를 마치자 관우가 물었습니다.

제갈근은 무슨 일로 오셨소?

나관중본에는 관우가 제갈근을 만날 때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제갈근이 형주에 이르자 강을 지키던 사람들이 관우에게 보고했다. 관우는 평생에 천하의 선비들을 깔보는 터라 수하에 맞이하라는 영도 내리지 않았다.’

춘추를 즐겨 읽고 문무의 지혜를 갖추었다는 관우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모종강은 이 부분을 싹둑 빼버렸습니다. 제갈근이 관우를 찾아온 까닭을 말했습니다.

양가의 화친을 위해 특별히 왔습니다. 우리 주인 오후(吳侯)께 아들 한 분이 계시는데 매우 총명합니다. 듣자니 장군께는 따님 한 분이 계시다고 하여 특별히 청혼을 하러 왔습니다. 양가가 혼사를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른다면 이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군후(君侯)께서는 생각해 보십시오.

범의 딸이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낸단 말이냐? 네 아우의 얼굴을 생각해서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당장 너의 목을 칠 것이다. 다시는 여러 말 말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우가 퍼르르 떨며 쏘아댔습니다. 그리고 수하를 불러 제갈근을 쫓아냈습니다. 제갈근은 머리를 싸안고 도망치듯 돌아왔습니다. 손권은 이 사실을 알고 대로했습니다. 제갈량이 그토록 주의를 주었고, 관우가 가슴속에 명심하겠다고 한 ‘촉오동맹’이 관우의 말 한마디에 와해하고 말았습니다.

손권이 조조에게 선공할 것을 요구하자 조조는 조인에게 군사를 일으키도록 했습니다. 한편, 조조와 손권의 작전을 안 유비는 제갈량의 계략을 받아 관우가 먼저 조인을 공격하여 두 나라의 협공작전을 와해시키라는 밀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전부사마(前部司馬) 비시가 시급한 전령을 가지고 관우에게 갔습니다. 관우는 비시를 보자 제일 먼저 한중왕이 자신에게 내린 벼슬이 궁금했습니다. ‘오호대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전하며 오호장(五虎將)을 알려주자 또다시 버럭 화를 냈습니다.

장비는 나의 아우고, 마초는 명문가 출신이며, 조자룡은 오래전부터 형님을 모셨으니 내 아우나 다름없소. 모두 지위가 나와 같아도 상관없지만 황충은 대관절 무엇이관데 감히 나와 같은 반열에 오른단 말인가? 나는 그런 노졸(老卒)과 절대로 짝이 될 수는 없소.

노장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노장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군이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옛날 소하와 조참은 고조(유방)와 함께 거사를 했고 가장 친근했지만, 한신은 바로 초나라에서 망명해온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왕이 되어 소하나 조참의 윗자리에 있었지만 소하나 조참이 이것 때문에 원망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중왕이 비록 오호장에 봉했으나 장군과는 형제의 의(義)가 있으므로 한 몸처럼 보고 있습니다. 장군이 바로 한중왕이고 한중왕이 바로 장군이시지요. 어찌 여느 사람들과 같겠습니까? 장군은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 계시니 마땅히 기쁨과 걱정도 함께 하고, 화와 복도 함께 누려야 합니다. 관호(官號)의 높낮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입니다. 장군께서는 잘 생각하십시오.

내가 밝지 못했소! 족하(足下)가 일러주지 않았으면 큰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관우는 평소 춘추를 즐겨 읽고 생각과 지혜도 깊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이러한 장면을 접할 때면 약간씩 의아함이 듭니다. 형주에서 너무 태평한 시절만 보낸 까닭인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