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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0) 우금은 목숨을 구걸하고 방덕은 죽음으로 말한 것을 지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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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비시의 설득으로 화를 풀었습니다. 한중왕 유비의 명령을 받들어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아 진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성 밖 영채에서 불이 났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관우가 급히 말을 몰고 달려갔습니다. 부사인과 미방이 술을 마시던 막사에서 불이 나서 화포로 옮아 붙었는데, 급기야는 영채 안에 있는 군량과 무기 등을 태워버렸습니다. 관우는 선봉으로 삼은 두 사람이 군사를 출동시키기도 전에 일을 그르치자 목 베어 죽이라고 호통쳤습니다. 비시의 설득으로 목숨만은 살려두었습니다. 각각 장벌(杖罰) 40대에 처하고 공안과 남군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술 마시다 불을 내고 관우에게 혼나는 부사인과 미방. 출처=예슝(葉雄) 화백

술 마시다 불을 내고 관우에게 혼나는 부사인과 미방. 출처=예슝(葉雄) 화백

내가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 만일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두 가지 죄를 한꺼번에 다스리겠다!

관우는 요화를 선봉으로, 관평을 부장으로, 마량과 이적을 참모로 삼아 출군했습니다. 관우가 장중(帳中)에서 잠깐 선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 소만 한 몸집의 시꺼먼 멧돼지가 뛰어들더니 곧장 관우의 발을 물었습니다. 관우가 소리치며 칼을 뽑아 내리치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관우는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관평을 불러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멧돼지 역시 용상(龍象)입니다. 발을 문 것은 바로 승진한다는 뜻입니다. 의심하거나 꺼리실 필요 없습니다.

관우의 꿈에 대해 좋다 나쁘다 옥신각신할 때, 한중왕 유비의 교지가 도착했습니다. 관우에게 전장군(前將軍)을 제수하고 절월(節鉞)을 주면서 형주 9군을 총괄하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두가 축하했습니다. 관우는 저룡(猪龍)꿈이 바로 이런 경사였음을 알고 마음속 의혹을 털어버렸습니다. 즉시 군사를 양양으로 전진시켰습니다.

조인은 관우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성을 굳게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부장 적원이 나가서 싸우길 원했습니다. 참모 만총은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수 하후존이 나섰습니다.

그것은 서생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어찌 물이 오면 흙으로 막고, 장수가 오면 군사가 맞는다는 말도 못 들었습니까? 우리 병사들은 편안히 앉아 힘을 기르면서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한 적을 맞았으니 간단히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침내 조인은 하후존의 말을 따라 만총에게 번성을 지키게 하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관우와 싸우러 나갔습니다. 관우는 관평과 요화를 불러 계책을 전달했습니다. 1회전은 요화와 적원이 붙었습니다. 요화가 거짓으로 패한 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자 적원이 뒤쫓으며 덮쳤습니다. 관우군은 20리를 후퇴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관우가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후존과 적원이 또 승리했습니다. 관우군은 또 20여리를 물러났습니다. 조조군의 선발대가 뒤따라 왔습니다. 조인이 선발대를 부르려고 할 즈음, 관평과 요화가 공격해왔습니다. 조인은 관우가 길목을 지키자 선발대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관우의 한 칼에 하후존이 죽었고, 도망치던 적원은 관평의 칼에 죽었습니다. 조인은 양양을 잃고 번성으로 물러나 지키기만 했습니다. 관우가 양양을 함락하고 기세등등 하자, 종군사마(從軍司馬) 왕보가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장군께서는 한 번에 양양을 함락하셨습니다. 조조의 군사가 비록 혼이 나기는 했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동오의 여몽이 육구(陸口)에 군사를 둔치고 늘 형주를 주워 삼키려고 하고 있으니 만약 군사를 거느리고 곧장 형주를 공격하면 어찌합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네. 자네가 즉시 이 일을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게. 장강 연안을 따라 2~30리에 하나씩 높은 언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대마다 50명의 군사가 지키게 하되 만약 동오의 군사가 강을 건너오면 밤에는 불꽃,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올리게 하게. 내가 직접 가서 격퇴하겠네.

왕보는 다시 부사인과 미방이 두 요충지를 지키고 있지만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총괄자를 선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관우는 치중(治中) 반준을 보냈습니다. 왕보는 반준은 적임자가 아니고 군량과 마초를 담당하는 양말관(糧秣官) 조루가 실수 없이 잘해낼 것이라고 진언했지만 관우는 왕보에게 쓸데없는 걱정 대신 봉화대나 쌓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번성으로 물러난 조인은 만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굳게 지키기만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부장 여상이 분격하여 나가서 싸울 것을 청했습니다. 만총이 제지하자 노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당신 문관들의 말대로 굳게 지키기만 하면 어떻게 적을 물리칩니까? 병법에 이르기를 ‘적군이 반쯤 강을 건너왔을 때 공격하라’ 했는데, 어찌 이 말도 듣지 못했소? 지금 관우의 군사가 양강을 반쯤 건너오고 있는데 어찌 공격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적군이 성 밑으로 다가와 해자가로 몰려들면 당해내기 어렵게 됩니다.

조인은 즉시 2천명의 군사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상도 관우의 적수가 안 되었습니다. 태반이 죽고 성으로 쫓겨 들어왔습니다. 조인은 급히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조조는 우금에게 조인을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우금은 선봉장 한 명과 함께 가고자 했습니다. 방덕이 분연히 자청하였습니다. 조조는 크게 기뻤습니다.

우금. 출처=예슝(葉雄) 화백

우금. 출처=예슝(葉雄) 화백

관우가 온 나라에 위세를 떨치면서 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제 방덕을 만났으니 참으로 버거울 것이다.

우금을 정남장군(征南將軍)에, 방덕을 정서도선봉(征西都先鋒)으로 삼고 7군을 거느리고 번성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조 진영은 방덕이 유비에게 투항한 마초의 부하임에 꺼림직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방덕은 관을 만들어 놓고 동료들을 부른 뒤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위왕의 한없는 은혜를 입었소. 그러니 목숨 바쳐 보답할 것이오. 이번에 번성전투는 관우와 피할 수 없는 결전을 벌이게 될 것인데,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될 것이오. 설사 잡혀 포로가 되더라도 나는 자결할 것이오. 그렇기에 이렇게 손수 관을 준비해 빈손으로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을 보여 주는 것이오.

관우와 방덕은 호각지세(互角之勢)였습니다. 몇 번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금이 영채를 골짜기에 치는 실수를 하고 8월 폭우가 쏟아져 한수가 범람하자 관우는 한수(漢水)를 이용해 우금의 7군을 수몰시키고 대승리를 거뒀습니다. 결국 우금과 방덕은 관우 앞에 사로잡혀 왔습니다. 우금이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한수에 수몰되어 사로잡히는 방덕.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수에 수몰되어 사로잡히는 방덕. 출처=예슝(葉雄) 화백

윗분의 명령으로 보내졌을 뿐,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닙니다. 군후(君侯)께서 가엾게 여겨 주시면 맹세코 죽음으로 갚겠소이다.

방덕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꼿꼿이 서서 꿇어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관우가 먼저 물었습니다.

너의 형은 지금 한중에 있고, 너의 옛 주인 마초도 촉에서 대장이 되었다. 너는 어째서 일찌감치 항복하지 않느냐?

내가 차라리 칼을 맞고 죽을지언정 어찌 너에게 항복하겠느냐?

모종강은 관우가 조조의 7군을 수몰시키고 우금과 방덕을 잡은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관우와 마초는 같은 편이다. 방덕이 관우와 싸우는 것은 마초와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인을 배반한 것이다. 그는 절개를 앞세우며 조조를 배반하고 관우에게 항복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전에는 마초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는가? 그렇기 때문에 방덕이 죽은 것을 식자들은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고기가 삼태그물 속으로 들어오는(人魚罾口) 바람에 관우는 앉아서 어부의 잇속을 챙겼다. 방덕은 몇 번이나 그물을 빠져 나가려 하다 마침내 도마 위에 올랐고, 우금은 벌을 받지도 않은 채 다행히 연못에서 길러졌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대개 고기는 그물에 들면 빠져나가기 어렵게 된다. 이것이 우금이 잡힌 연유이고, 고기가 마르지 않는 물을 만난 것, 그것이 우금이 끝내 살아난 연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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