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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재명 공방’에 얼룩진 추석…여야, 정치 복원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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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영장 기각 놓고 연휴 내내 비이성적 정쟁

기각이 면죄부 아냐…여당도 법원 존중을

6일간 이어진 추석 연휴 기간 중 전국의 밥상 ‘민심’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정국의 향배에 집중됐다. 많은 국민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갇혀 극단적인 대결 정치로 일관해 온 여야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이 대표 영장 기각과 함께 찾아온 연휴 내내 여야는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발언만 쏟아내며 비이성적 공방전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연휴 내내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맹공했다. 영장 기각이 무죄 판결이라도 되는 듯 윤 대통령의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했고, 이재명 대표는 기각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800여 자에 달하는 법원의 기각 결정문을 보면 이 대표는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고, 백현동 개발·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서도 관여 또는 개입했을 의심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대표는 구속만 면했을 뿐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게 아니라 재판 때까지 미뤄진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정치 검찰의 사기극’이라 못 박고 수사와 관련 없는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한 건 이 대표의 피의 사실 자체를 무시한 정치 공세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 대표의 과제는 따로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로 격화한 당의 내분을 수습하는 것이다. ‘가결파 색출과 처벌’을 부르짖는 ‘개딸’ 등 강성 지지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원내대표마저 친명계가 장악한 지도부 역시 다양성을 담보한 연합으로 재편돼야 한다. 사법 리스크에 따른 내분은 이 대표가 자초한 것인데, 가결 파동으로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만 물러난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이 대표 측이 앞으로도 영장 기각을 명분으로 당을 친명 일색으로 끌고 간다면 많은 당원과 국민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방탄 정당’에서 벗어나 민생 입법과 국정감사에 전력하는 원내 1당 본연의 역할로 복귀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변해야 한다. 영장 기각을 놓고 김기현 대표부터 “편향적 사법부의 궤변 같은 결정”이라고 맹공했는데, 법원 결정에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더라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집권여당의 자세다. 강성 지지층의 분노를 업고 삼권분립을 부인하는 발언을 남발한다면 개딸들에게 휘둘려 온 민주당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나아가 국민의힘은 그동안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 뒤에 숨어 반사이익만 노려온 건 아닌지 반성하며 민생정치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총선이 반년 넘게 남았는데도 벌써 입법은 팽개치고 공천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의원들이 차고 넘친다는 비판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