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통제 투혼’ 이준환, 천금 같은 은메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7면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타지키스탄 선수에게 되치기 패를 당한 뒤 고개를 떨군 이준환. 지난 6월 허리 부상을 당한 그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한 끝에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뉴스1]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타지키스탄 선수에게 되치기 패를 당한 뒤 고개를 떨군 이준환. 지난 6월 허리 부상을 당한 그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한 끝에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뉴스1]

‘진통제 투혼’을 펼친 이준환(21·세계랭킹 6위)이 한국 유도에 값진 은메달을 안겼다.

이준환은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81㎏급 결승에서 소몬 막메드베코프(24·세계 15위·타지키스탄)에 업어치기 되치기 절반패를 당했다. 이로써 이준환은 생애 첫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후 이준환은 얼굴을 찡그렸다.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리도 절뚝였다. 힘들어서 아니었다. 허리 부상 때문이다. 그는 아시안게임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6월 허리를 다쳤다. 근육이 크게 손상되는 부상이었다. 여기에 손가락 인대 부상까지 겹친 탓에 지난 6월 청두 유니버시아드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휴식을 취할 순 없었다. 진통제를 맞으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날도 결승전을 1시간 앞두고 허리에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준결승에서 무리해서 허리를 쓰다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까지 갔기 때문이다. 통증 때문에 결승을 앞두고 기술 훈련은커녕 몸 풀 엄두도 못 냈다.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타지키스탄 선수에게 되치기 패를 당한 뒤 고개를 떨군 이준환(위 사진). 지난 6월 허리 부상을 당한 그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한 끝에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뉴시스]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타지키스탄 선수에게 되치기 패를 당한 뒤 고개를 떨군 이준환(위 사진). 지난 6월 허리 부상을 당한 그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한 끝에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뉴시스]

이준환은 “안 아픈 곳이 없다. 테이핑을 하지 않으면 양 손가락으로 물체를 잡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하다. 아무래도 몇 군데 인대가 파열된 것 같다”면서 “‘당장 수술하자’는 의사의 말을 들을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난 어떤 상황에서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대신 여기서 멈추지 않고 꿈을 향해 더 열심히 나아가겠다”면서 “내 진짜 목표는 내년 파리올림픽 금메달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고장난 몸을 고친 뒤, 올림픽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희태 대표팀 감독은 “투혼으로 이뤄낸 은메달, 금메달 100개보다 값지다”고 칭찬했다.

이준환은 혜성처럼 나타난 특급 신인이다. 지난해 3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불과 1년여 만에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특히 한국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유도 종주국이자 최강국인 일본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일본의 에이스이자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나가세 다카노리를 두 차례(2022 몽골 그랜드슬램 3회전, 2023 세계선수권 8강)나 꺾었다. 이준환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으로 가는 승부처에서도 ‘일본 킬러’의 면모를 과시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의 특급 유망주 오이노 유헤이(22)를 상대로 10분29초(연장 포함)간의 혈투 끝에 지도승을 거뒀다. 한국 유도 특유의 강철 체력을 앞세워 끈질기게 몰아친 덕분이다. 지친 오이노는 수비만 하다 소극적인 플레이로 세 번째 지도를 받고 패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대구의 화교학교에 다녔다는 이준환은 경기 후 유창한 중국어로 “인연이 있는 중국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파리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겠다. 꼭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한국 유도는 이준환의 은메달 외에도 이날 동메달 2개(여자 52㎏급 박은송, 여자 63㎏급 김지정)를 추가했다. 북한의 문성희(21)는 여자 70㎏급 결승에서 일본의 시호 다나카에게 한판패를 당해 은메달을 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