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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푸틴·김정은이 일으킨 동북아 평지풍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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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박6일 러시아 ‘군사 외교 투어’를 마무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의 굴욕을 맛본 김 위원장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초청했다. 러시아의 우주 인프라에 감격한 김 위원장은 ‘우주 강국의 심장’을 보여준 것에 사의를 표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선 러시아의 성전(聖戰)에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정상회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진전 우려
한미 기술동맹 다지고, 중 견인을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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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자기 고백에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며 북·러 정상회담의 이유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이후 유리 가가린 군수공장과 크네비치 군 비행장,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사령부 등을 방문해 ‘러시아판 3축 체계’를 확인했다.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방위적 협력과 국제사회의 제재 무력화를 노린 북·러 단일대오의 서막이 열렸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와 탄약 공급 등을 통해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고, 러시아는 군사기술협력 등 북한의 ‘5대 국방 과업’ 지원 카드를 각각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명백히 ‘위험한 거래’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푸틴 대통령과 국제적 고립이 극에 달한 김 위원장은 서로 ‘잊힌 동맹’이자 ‘오랜 친구’를 소환해 궁지를 벗어나려는 출구전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러시아는 김 위원장의 숙원이자 정치적 상징성이 큰 인공위성 분야에서 협력을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2004년 한국 정부는 우주의 탐사 및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러시아와 우주기술협력협정을 체결했다. 1991년 신생 러시아연방 출범 이후 본격화한 한·러 우주기술 협력은 지난 5월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로 빛났다.

이제 러시아는 한국과의 우주 협력 경험을 북한에 적용해 압축적으로 북한의 우주기술 성장과 자립을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우주 분야 협력 성과 및 북·러 신뢰 수준을 고려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핵추진잠수함 등 북한의 5대 국방과업 완수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기술 협력을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러 군사협력이 북·중·러 3각 공조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해상훈련 및 공중비행정찰 등을 통해 연합 태세를 발전시켜 왔다. 중·러가 반미·반제에 맞서겠다는 북한을 밀어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북·러의 밀착을 보는 중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북한을 포용한다는 것은 결국 ‘누가 북한을 부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되기에 북한을 두고 중·러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중국에 대해 디커플링(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억제)으로 전환을 선언하며 유화적 신호를 보내는 상황에서 북·중·러 3각 공조는 중국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제약할 수 있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는 사상 처음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참석해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기반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 참석해 국제 규범과 유엔 결의를 위반한 북·러의 군사 거래를 경고하고,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정책 공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러 군사협력의 치명성은 정치권력의 확실성을 기반으로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 없이 정책 이행 속도와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북한이 낙후한 무기체계에 러시아의 첨단 기술을 속도감 있게 탑재할 경우 북한 군사력은 ‘도약적 발전’이 가능하다. ‘북핵·미사일 능력 2.0’ 완성은 예상보다 일찍 다가올 수 있다.

북한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는 기술동맹 수준을 격상하고 대잠수함 및 잠수함 훈련과 연합공중훈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북·중·러 3각 공조의 군사 블록화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역내 안보 상황이 더 엄중해졌다. 한·미 동맹의 철통 같은 대비태세 유지와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는 물론 국론 결집이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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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