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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유령 도시’ 된 부실 대학 캠퍼스, 파산 도미노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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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법원이 파산 선고한 진주 한국국제대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대학 캠퍼스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황량하게 버려진 캠퍼스 풍경은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2학기 개강을 맞은 캠퍼스의 낭만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난 4일 찾아간 경남 진주시 문산읍의 한국국제대학교 모습이다. 법원은 지난 7월 이 학교에 파산을 선고했다. 텅 빈 강의실 의자와 폐허로 방치된 운동장 등이 이곳이 한때 대학 캠퍼스였다는 걸 보여줬다. 강의실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은 곳곳이 깨져 있었고 건물 내부에선 곰팡내가 풍겼다.

각 건물 입구에는 파산관재인 변호사 명의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캠퍼스 곳곳에는 파산선고를 알리는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31일 폐교와 동시에 모든 교수와 교직원은 근로계약이 종료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전원 해고라는 얘기였다. 현수막에는 학교 무단출입을 경고하는 문구도 있었다. 이 학교 학생과 교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달 15일까지 시간을 줄 테니 모든 개인 물품을 챙겨가라고 했다.

100억대 임금체불, 공과금 미납
2학기 수업 못 하고 조기 폐교

“재단 비리, 장학금 중단 결정타”
전국 두 번째 파산 대학 불명예

“부실 학교에 퇴로” 정경희 법안
교육부·여당 찬성, 야당은 제동

지난달 말 폐교한 한국국제대 교문. 주정완 기자

지난달 말 폐교한 한국국제대 교문. 주정완 기자

교문 근처 보건복지관 쪽에서 오가는 사람이 보였다. 이 학교 경찰행정학과의 한동효 교수를 만났다. 그는 교수 연구실에 놔두고 간 개인 물품을 챙기러 왔다고 했다. 한때 부총장까지 지냈던 한 교수는 “이미 2018년부터 교수 월급도 체불되고 학교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 파산밖에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정배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그나마 많은 학생이 우여곡절 끝에 다른 학교로 특별편입학을 할 수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전했다.

신입생 급감, 경영난 심화 악순환

학교가 문을 닫기도 전에 법원이 파산을 선고한 건 한국국제대가 국내에서 두 번째였다. 재판부는 그동안 쌓인 경영부실이 심각해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학교 재산을 처분해 밀린 빚을 일부라도 갚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전남 광양의 한려대가 국내 최초로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급여를 받지 못한 퇴직 교원들이 법원에 학교 재단의 파산을 신청했다.

한국국제대에선 상당수 현직 교원도 파산 신청에 참여했다. 이들이 임금 체불을 당했다고 신고한 금액은 약 100억원이다. 여기에 전기·수도요금 등 밀린 공과금도 10억원에 이른다. 결국 단전·단수를 경고하는 독촉장까지 받았다. 최소한의 학사 운영조차 힘겨운 상태였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다른 데 빼가지 못하게 하는 게 시급했다. 공과금 미납도 꼭 학교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인 직인을 제대로 찍어주지 않는 바람에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캠퍼스 한쪽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주정완 기자

캠퍼스 한쪽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주정완 기자

한국국제대의 역사는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문을 연 진주실업전문학교가 이 학교의 전신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쳐 2003년 4년제 사립 종합대학인 진주국제대로 승격했다. 2008년에는 경남 창원한마음병원 재단(강인학원)이 인수하고 한국국제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에는 병원 재단이 손을 떼고 비리 논란이 많았던 기존 재단(일선학원)이 복귀하면서 경영난이 심각해졌다.

결정적인 고비는 2018년에 찾아왔다.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평가에서 한국국제대는 최하위 등급을 받고 재정지원제한대학(Ⅱ유형)에 지정됐다. 정부 지원이 끊어진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이나 국가장학금 혜택도 중단됐다. 가장 큰 문제는 재단 비리였다. 당시 이 학교 재단의 강모 이사장은 교수 채용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전에도 교비나 건축비 횡령, 교수 채용 비리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폐교 후 편입학 매뉴얼 없어 혼란

지저분하게 방치된 강의실 건물 내부. 주정완 기자

지저분하게 방치된 강의실 건물 내부. 주정완 기자

박 교수는 “이사장의 불법 행위로 교육부 평가에서 중대한 벌점을 받은 게 결정타였다. 교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평가를 준비해도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입생 충원율이 급감하면서 등록금 수입이 줄자 교육 여건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올해 이 학교 신입생은 27명에 그쳤다. 전체 학교 정원의 6.9%였다.

파산 선고는 다른 방식의 폐교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미리 계획한 일정이 아니어서 학교 구성원들이 사전에 폐교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국제대에선 법원의 결정으로 1학기만 마친 상태에서 급하게 학교 문을 닫게 됐다. 남은 교수들은 법원의 파산 선고 이후 “무보수를 감수할 테니 2학기까지는 수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4학년 학생들은 어떻게든 학점을 채워 졸업할 기회를 주자는 뜻이었다.

재판부는 교수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학이 학사 운영을 할 여력이 없고 조기 폐교를 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2021년 파산 선고를 받은 한려대가 그해 2학기 수업까지 마치고 폐교한 것과는 사정이 달랐다. 한국국제대 학생들 사이에선 “다른 학교로 특별편입학할 수 있으니 차라리 잘 됐다”는 긍정적 반응과 “나름대로 준비한 계획이 다 틀어지게 생겼다”는 부정적 반응이 함께 나온다.

교육부는 1차 편입학을 신청한 한국국제대 학생(359명) 중 97%가 다른 대학에 등록을 마쳤다고 전했다. 남은 학생 약 200명에 대해선 내년 1학기에 2차 편입학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교육 당국이 충분한 준비가 안 돼 있어 학생들이 편입학 학교를 정할 때 혼란을 많이 겪었다. 앞으로 우리 같은 학교가 많이 나올 텐데 폐교했을 때 편입학 매뉴얼 등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의 파산 선고를 알리는 현수막. 주정완 기자

법원의 파산 선고를 알리는 현수막. 주정완 기자

부실 대학의 ‘폐교 도미노’가 본격화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게 됐다.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대학은 전국에서 20곳(전문대와 대학원대학 포함)에 이른다. 서울의 한 곳(인제대학원대학)을 제외한 19곳은 지방 사립대였다. 대부분 재단 비리나 학사 운영 부실로 경영난을 겪다가 폐교를 면치 못했다.

2021년 이후에는 법원의 파산 선고가 새로운 형태의 폐교 방법으로 등장했다. 임금 체불을 당한 전·현직 교직원 등 채권자가 파산 신청을 하면 법원이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전에는 교육부가 강제 폐쇄를 명령하거나 학교 재단이 자진 폐교를 결정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육계에선 이제라도 건실한 대학과 부실한 대학을 구분하지 않으면 다 같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기 협성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지난 5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책포럼에서 “앞으로 폐교하는 대학이 지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면서도 “지방대학이 대부분 부실하고 위기에 처한 것처럼 생각하는 건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평가를 통해 옥석을 가린 뒤 건실한 지방대학에는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발적 폐교에 인센티브” 법안 발의

부실 대학에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해서 제기된다. 현행법은 사립학교가 문을 닫으면 남은 재산을 모두 국가가 가져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 재단 입장에선 스스로 폐교를 선택할 만한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오히려 부실이 심해지거나 말거나 최대한 오랫동안 버티는 게 재단 경영진에겐 개인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2014년 보고서(‘고등교육기관 퇴출구조에 관한 연구’)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잔여재산 국고 환수 규정이 있는 한 사립대학의 설립자나 그 직계존속은 자발적으로 (부실 대학을) 청산할 유인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교육부와 사립학교 재단의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법을 고쳐 사학진흥기금에 ‘청산지원계정’이란 것을 만들었다. 폐교 대학을 청산한 뒤 남은 재산이 있으면 따로 모아뒀다가 다른 폐교 대학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폐교 재단의 입장에서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건 이전과 마찬가지다.

현재 국회에는 자발적으로 폐교하는 대학에 인센티브(해산장려금)를 주는 내용의 법안이 올라가 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사립학교 구조개선법 개정안이다. 폐교 후 학교 재산을 팔아 빚을 다 갚고도 남는 돈이 있으면 그중 30% 한도에서 학교 재단 경영진에게 줄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일부 야당 의원이 제동을 걸면서 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교육부도 기본적으로 해산장려금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7월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학교 설립자나 법인에서 기존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얻는다든지 개인적으로 빼가면서 학교를 황폐화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개인의 부도덕성이나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결과적으로 대학 생태계나 지역 경제를 갉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차관은 “(해산장려금을 규정한) 정경희 의원 안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