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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3번째 헌재 심판대 오른 사형제, 이번엔 폐지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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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6년째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 결론은…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24일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에 이어 오는 11월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끝난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유 소장은 김 전 원장과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판사다. 그를 포함해 헌법재판소에선 2년 안에 7명(전체 9명)의 재판관이 대거 교체된다. 사법부의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이 같은 변동을 앞두고 주요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96년,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심판대에 오른 사형제가 대표적이다. 2019년 2월 청구돼 결론지을 때가 되기도 했다. 앞선 심판에선 형법(41조)에 규정된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각각 ‘7대 2’와 ‘5대 4’ 합헌 결정이었다.

4년 7개월째 헌재서 심리 중
1996·2010년 모두 합헌 결정

‘위헌’보다 ‘헌법불합치’ 가능성
진보·중도 성향의 재판관 많아

여론은 ‘존치’가 폐지보다 3배
법무부, 절대종신형 입법예고

다만 위헌법률심판이던 2010년과 달리 이번엔 헌법소원심판이다. 본질적 심리 내용은 비슷하지만 청구 주체가 다르다.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자는 수감 당사자로 논쟁의 핵심은 헌법 110조 4항이다. 헌재 결정엔 법리도 중요하지만 재판관의 성향과 가치관도 주요 변수다. 사형제의 경우엔 종교적 소신도 무시할 수 없다.

재판관 3분의 2 문재인·김명수 임명

1980년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김대중도서관]

1980년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김대중도서관]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이다. 특히 사형제 폐지는 진보 진영의 숙원이었다. 실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것도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부터였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사형제 폐지론자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사형은 흉악범 억제에 효과가 없고 20년 동안 집행하지 않았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재판관은 정치적 이념을 직접 드러낼 수 없기에 추천자에 따라 성향을 엿볼 수 있다. 9명의 재판관 중 7명은 문재인 전 대통령(유남석·문형배·이미선)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은애·김형두·정정미), 더불어민주당(김기영)이 추천했다. 나머지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종석)과 바른미래당(이영진) 몫이었다. 이 중 3명은 이례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식적인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혔다.

유 소장은 2018년 인사청문회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전제로 사형제는 폐지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같은 해 임명된 이은애 재판관도 “사형제 폐지 쪽으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9년 문형배 재판관은 “입법론적으로 사형제는 폐지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사형제의 문제점을 지적은 했지만, 존폐까진 밝히지 않았다.

보수 몫의 재판관들도 인사청문회에선 사형제 폐지 여부와 관련해 말을 아꼈다. 이영진 재판관은 ‘큰 틀에서는 합법이지만 제한적 범위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 “오판 가능성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석 재판관은 “사형제 논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위하력(威嚇力)을 실제로 검증하는 것”이라며 “국민감정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밝혔다.

국가의 생명권 침해 가능한가

그렇다면 과거의 헌재 심판은 어땠을까. 김동훈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헌재 출범(1988년) 직후 2차례 헌법소원이 있었지만 모두 각하됐다”고 설명했다. 1989년엔 제소 기간이 지나서, 1990년엔 청구 6개월 만에 사형이 집행돼 제때 심리를 못 했다. 처음 헌재의 결론이 나온 건 1996년에 이르러서다. 당시 재판부는 “사형이 다른 생명과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한 위헌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두 번째(2010년)는 위헌법률심판으로 진행됐다. 다수 의견(5명)은 헌법 110조 4항 ‘비상계엄의 군사재판은 단심으로 할 수 없다. 사형 시엔 그렇지 않다’를 근거로 형법의 사형 조항이 타당하고 결정했다. “문언(文言)상 헌법이 사형제를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낸 김희옥 당시 재판관은 “사형 선고를 억제해 인권을 존중하자는 뜻이지 사형제를 인정한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번 심판의 핵심 쟁점은 헌법 110조 4항이다. ‘사형’이란 단어는 130개 헌법 조문 중 딱 한 번 나온다. 왜 필요한지는 설명돼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항을 우리 헌법이 사형을 인정하는 근거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많다. 사형제 폐지를 요청한 청구인들은 “상고 가능성을 규율하는 기술적 성격의 조항이며, 전쟁 등 비상상황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범죄 일반의 헌법적 근거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쟁점은 국가의 기본권 침해는 어디까지 가능한가이다. 청구인들은 “국가가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는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법무부는 “일반 국민의 생명보호와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생명권 제한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법무부는 헌법소원심판의 이해관계인으로 일반 재판의 피고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표면적으로 법무부는 사형제 존치론을 대변하지만, 실제 집행까진 부담스러워 한다. 지난 8월 국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어떤 정부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적은 없다”면서도 “사형의 형사 정책적 기능이나 국민의 법 감정, 국내외 상황을 잘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7월에는 “실제 집행 시 EU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도 있는 등 외교적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가석방 없는 절대종신형 도입?

실정법인 사형제를 법무부가 나서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한 장관의 발언처럼 집행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형 확정판결이 난 것도 2016년 ‘GOP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임모씨가 마지막이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한 나라는 112개국이다. 반대로 지난해 실제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중국·이란 등 20개국뿐이었다.

국제적 관점에서 사형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다만 사형제를 대체할 수 있는 형벌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폐지를 추진하긴 어렵다. 지난 8월 법무부가 사형과 무기징역(가석방 기준 20년) 사이에 ‘가석방 없는 절대종신형’ 도입을 입법예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허수아비가 된 사형제를 대신할 고육책이었다는 평가다.

사형수들도 절대종신형을 사형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여긴다.(2019년 ‘사형 폐지에 따른 법령정비 및 대체형벌에 관한 연구’) 감형 가능성과 가석방 없이 평생 수감돼 있어야 하는 절망감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절대종신형 도입은 반인권적이란 주장도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유과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기 때문에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선 이미 위헌 결정이 났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사형제 폐지로 가닥을 잡을 경우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직접 ‘위헌’보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즉시 법적 효력을 잃는 ‘위헌’과 달리 ‘헌법불합치’는 국회에 개정 시한을 주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정한다. 2019년 인사청문회에서 이미선 재판관도 “사형제의 폐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입법에 의해 정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형제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은 무엇일까. 먼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전통적으로 사형제를 반대한다. 2021년 대선후보 토론 때도 두 당의 후보(이재명·심상정)는 폐지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의견이 다소 갈린다. 홍준표 대구시장처럼 당장 사형 집행을 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지만, 서방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와 범죄예방의 실익 등을 고려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크다.

국회가 최종 결정할 수도

윤석열 대통령은 신중론에 좀 더 가깝다. 대선 후보 시절 사형제 폐지를 묻는 질문에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인 상황에서 완전 폐지는 사회의 성숙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앞서 국민의 법 감정과 외교적 문제 등을 언급한 한동훈 장관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최근 잇따른 흉악 범죄로 인해 정부 여당의 인식은 사형제 유지 쪽으로 기우는 형국이다.

국민의 여론은 어떨까. 최근 10년간(2012~2022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5차례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치 여론은 폐지 여론보다 2.3~4.9배 높았다. 지난해는 찬성(69%)이 반대(23%)의 3배였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2003년 갤럽)는 존치(52%)와 폐지(40%) 여론이 비등했던 적도 있다”며 “사형제 존폐는 포퓰리즘에 기대기보다 시민적 숙의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