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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대전 민심, 대선 1번 찍은 사람도 "약속 어기는 민주당 이젠 아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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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스윙보터’ 대전, 미리 보는 추석 민심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내년 4월 총선을 7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정치권에 대형 이슈가 몰아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거취 논란으로 제1 야당 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경우 '반사 이득' 없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진영별 극렬 지지층이 결집한 가운데 내년 총선의 향배는 중도·부동층의 표를 누가 더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지난 23일 오전 대전복합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정치권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김성탁 기자

지난 23일 오전 대전복합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정치권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김성탁 기자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영남과 호남은 각각 여권과 야권에 꾸준히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다수당이 되려면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선전해야 하는데, 수도권처럼 한쪽에만 표를 주지 않고 번갈아 투표하는 경향을 보이는 ‘스윙보터’ 지역이 대전·충청이다.

총선 향배는 중도·부동층에 달려

 대전은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때 지역구 7석 모두를 민주당에 안겼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3명, 민주당 4명으로 갈렸다. 지역구가 6석이던 2012년 19대 총선도 새누리당 3명, 민주통합당 3명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 대전의 득표율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앞섰다. 이어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이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4개 시·도지사를 휩쓸었다.

 최근 정치권 상황을 스윙보터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지난 23일 오전 동구 복합터미널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선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 상황을 전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지인들과 뉴스를 보던 유모(80·동구)씨는 요즘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뜸 “이재명이 제대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지만, 일반인에 비해 수사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씨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와 관련해 “대통령이 잘한다기보다도 민주당 얘들이 했으면 큰일 났겠다 싶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이어 “경제 문제도 (민주당) 지네들이 망쳐놓고서 민생이 어떻다고 떠들더라”며 ”대전이 지역구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바른말을 하던데, 총선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동안 보수 정당에만 표를 찍어왔다고 했다.

지난 총선 대전 지역구 민주 싹쓸이…대선·지방선거는 여 우세
"단식도 불려 갈 것 같아 한 것 아니냐"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 현상
"민주당 뭉치면 지지율 올라갈 건데…" 동정론 있지만 소수에 그쳐
윤 대통령 대해선 "고집 있어 좋아" vs "난 갈 길 갈게 식이라 답답"

 유씨와 달리 터미널 앞 벤치에 앉아있던 한모(59·서구)씨는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젠 아녜요. 아예 거기는 이제….”라며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불체포 특권을 버리겠다고 약속했으면 이 대표가 지켜야 했는데, 이쪽저쪽 핑계나 대고…. 단식도 자기가 불려 들어갈 것 같으니 한 거로 보이는데, 의석수 많다고 그러는 건 아니죠.” 한씨는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과 그 이후 색출 논란에 대해서도 “무기명 투표인데 어기구 의원이 부결했다는 사진을 올렸더라"며 "일반 시민이 그러면 처벌받는다는데, 국회의원은 달나라에서 왔느냐”고 쏘아붙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자 한씨는 “역대 대통령 지지율로는 꼴등이나 마찬가지라지만 난 잘한다고 본다”며 “밀어붙이는 고집이 있고, 국방부터 튼튼하게 하려 하고, 러시아나 중국과도 싸울 줄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내년 총선 때 어느 정당을 찍을지 정했다는 그는 “요즘 정치 얘기는 친구들과도 안 한다. 싸움 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사 너무 길어, 이 대표 거취 결단해야"

 반면 터미널에서 대전 중앙시장까지 이동하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전모(72·동구)씨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잘못했다는 쪽이었다. “사람마다 다른데, 솔직히 나는 민주당이 안타까워. 지금은 뭉쳐야지, 밉든 곱든 당 대표잖아. 윤석열 정부가 지금 잘하는 게 없어서 민주당이 뭉쳐 있으면 자동으로 인기가 올라갈 건데….”

 전씨는 이 대표에 대한 장기간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잘못하는 게, 대선 승리자이면 그만 털어도 되지 않느냐”며 “이재명이 감옥 가든 대법원에서 무죄 받든 그래야 끝나게 돼 있는데, 힘든 서민 처지 아랑곳없이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지금까지 이재명 수사만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을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자기 입으로 말했던 만큼 구속되면 옷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민주당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마땅한 사람도 없지 않으냐”고 말을 흐렸다.

 이날 오후 중앙시장에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수산물 등을 일정 금액 이상 사면 상품권으로 환급해주는 장소에는 긴 줄이 생겼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회사원 김모(47·대덕구)씨는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이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의 행적에 대해선 쓴소리를 했다.

 “개인적으로 이 대표가 단식 투쟁에 들어가는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느낌이었어요. 과연 지금 크게 의미 없이 단식 투쟁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싶은 거죠.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구린 부분이 있으니 그런 게 아닌가 의문이 들게 한 것 같아요.” 김씨는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큰 실망을 했었기 때문에 아직 민주당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는 입장이라면서도 “이 대표는 이 정도 되면 본인이 물러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김씨는 “답답하다”며 “의논을 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없이 ‘너희는 그렇게 해, 나는 갈 길 갈게’ 이러는 것 같다”고 평했다.

지난 23일 대전 중앙로역 인근 도로 건널목에 정치적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성탁 기자

지난 23일 대전 중앙로역 인근 도로 건널목에 정치적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성탁 기자

 "체포동의안 가결로 방탄 모면 다행"

 시장과 인접한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는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거리 한가운데에선 정의당 측이 일본의 핵 오염수 방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거리에서 만난 홍모(35·서구)씨는 자영업을 하다 정리한 상태였다. 홍씨는 과거 민주당에 1000원 당비를 냈었지만 지금은 민주당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바뀐 상태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한다고 했다가 교묘하게 말을 바꾸고,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도 모른다고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민주당이 쌓아왔던 이미지를 너무 많이 깎아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홍씨는 “당내 자정 작용이 일어났더라면 진작 쳐낼 것을 쳐냈을 텐데, 수족처럼 붙어서 대표를 보호한 민주당 자체가 문제”라며 “그나마 마지막에 체포동의안 가결 표가 나와 완전히 방탄만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를 주지는 않았다. “비즈니스 외교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은 좋게 보이는데, 포장을 너무 못 해주는 것 같다”며 “일본 오염수 방류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국민 건강과 직결된 내용이라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처가 너무 아마추어 같지 않냐”고 평가했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은 젊은 남성 사이에서, 이재명 후보는 젊은 여성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었다. 홍씨는 “친구들과 모임을 해보면 여전히 남자 친구 중에는 여권 지지 경향이 다소 강하고, 여자 친구들 사이에선 이재명 대표가 일을 잘 하지 않겠느냐며 호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번화가인 중앙역 인근 횡단보도에는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비난하는 민주당 현역 의원의 현수막과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의 추석 인사 현수막, 과거 선거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현수막 등이 한꺼번에 걸려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시민 중 민주당이 싹쓸이하고 있는 대전 지역구 의석이 내년 총선에서도 지금처럼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이는 없었다. “여기 대전은 한쪽으로 무조건 찍어주는 건 없어. 아직은 모르겠고, 더 있어 봐야 돼. 민주당이 160석 차지하는 현상은 없을 거고, 여기는 반반이나 하려나 몰라….”

 스윙보터 지역에서 만난 이들 중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을 빼면 연령의 고저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초유의 검사 탄핵안을 처리한 것까지 화제로 올리곤 했다. 실제 총선의 승패를 예단할 수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탈 현상이 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