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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면책권 안 넓히면 ‘저위험 권총’이라도 쓸 경찰 없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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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흉기난동에 ‘저살상 총기’ 대응, 효과 있을까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우리 사회의 안전지수가 경계선을 넘어섰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4~25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은 모두 315건에 달한다. 하루 10건 넘게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경찰도 비상 태세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달 4일 “흉기 난동 범죄엔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고, 101개 기동대에 흉기 대응 장비를 신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흉기난동 하루 10여건
우리 사회 곳곳에 치안 빨간불

“흉기범에 정당한 물리력 행사”
살상력 90% 줄인 새 권총 보급

일선 경관 “민형사 책임 두려워”
국민 인권 침해 여부도 살펴야

지난해 경찰 총기사용 총 5건

지난달 27일 충북 청주에서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던 40대 남성을 경찰이 권총으로 제압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지난달 27일 충북 청주에서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던 40대 남성을 경찰이 권총으로 제압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현재 경찰에 지급된 권총은 총 6만정 남짓이다. 미국 스미스&웨슨사 제품인 38구경 6연발 리볼버다. 그러나 경찰이 범인 제압을 위해 총기를 사용한 사례는 드물다. 2019년 6건, 2020년 9건이었고 2021년과 지난해는 5건에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소송 때문이다. 법원은 경찰의 총기 사용이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는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경찰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총기 대용으로 2005년 전기충격기인 테이저건을 보급했으나 사정거리가 10m 이내로 짧고 명중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돼 내년 도입을 앞둔 것이 ‘저위험 권총’이다.

경찰 소식통은 “2015년 2월 경기도 화성 가족 살해 사건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장이 엽총 든 범인에 총격당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저위험 권총 개발을 추진한 끝에 내년 5700여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당시 숨진 파출소장은 테이저건만 소지하고 범인과 대화를 시도하다 총에 맞았다”고 말했다.

저위험 권총은 경찰의 기존 권총(680g)보다 무게가 30% 가벼운 515g이고 소음도 일반 권총(160㏈)보다 20~30㏈ 적다. 격발 시 반동도 30% 선이다. 허벅지에 쏘면 최장 6㎝까지만 총탄이 들어가 뼈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했다. 방산업체인 SNT 모티브사가 정부 예산 25억원과 자체 예산 17억원 등 총 42억원을 투입해 2016년부터 5년 동안 개발해 완성했다. 이 회사 박수만 책임연구원의 얘기를 들어봤다.

“피하 최대 6㎝까지만 관통”

경찰이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저위험 권총. 위력이 기존 권총의 10% 선이다. [사진 SNT 모티브]

경찰이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저위험 권총. 위력이 기존 권총의 10% 선이다. [사진 SNT 모티브]

저위험 권총의 특징은.
“지금까지 저위험탄은 일반 총탄보다 큰 스펀지탄 등이 쓰였으나 이번에 개발한 권총(STRV9)은 기존 권총처럼 화약을 에너지원으로 쓰고 총탄 지름도 동일하다. 즉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규격인 9㎜ 총탄이다. 이런 표준 규격 저위험 총탄은 세계 처음이다. 다만 탄두는 일반 총탄처럼 동(구리)이 아닌 강화 플라스틱이다. 적은 에너지로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살상력을 최소화한 재질이다. 한양대 의대 해부학 교수에게 조언을 받았다.”
그밖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총의 위력은 화약의 폭발력인데, 저위험 권총은 화약량이 기존 권총의 3분의 1이고 위력도 10% 수준이다. 총탄 속도도 기존 권총(초당 350m)보다 30% 느린 초당 253m다. 탄두 끝이 일반 총탄보다 뾰족해 관통 구멍 지름이 기존 권총(5~6㎝)보다 작은 2㎝다. 구멍이 작을수록 살상력이 작다.”
관통 깊이 시험은 어떻게 했나.
“미 연방수사국(FBI)가 쓰는 젤라틴 블록과 미 국립사법연구소(NIJ)가 쓰는 인체 유사 점토에 총을 쏴 깊이를 측정했다. 돼지 사체에도 시험했다. 인체는 부위별로 근육이 달라 돼지의 다리, 늑골 등 여러 부위를 쏴 측정했다. 그 결과 관통 깊이는 4~5.5㎝ 이내여서 최대 관통 깊이를 6㎝로 설정했다. 사격장 거리인 15m를 유효 사거리로 정해 개발했으나 4~5m 이내에서 쏴도 관통 깊이는 동일했다.”

범죄자에 시각적 공포 유발

외국에도 진출했나.
“지난해 중동 어떤 국가에 저위험 권총을 수출했는데 ‘신기하면서 성능 좋은 총’이란 반응을 들었다. 몽골과 싱가포르, 홍콩도 관심을 표했다. 일반 권총은 반동이 강해 쏘면 손이 들리고 손바닥도 아프지만 저위험 권총은 반동이 작아 손이 들리지 않는다. 이 점이 경찰의 호평을 받고 있다.”
범죄자 제압 효과도 커지나.
“총을 안 쏘고도 범죄자의 공포를 극대화해 제압하는 게 최고다. 저위험 권총은 일반 권총과 동일한 형태라 테이저건보다 시각적 제압 효과가 훨씬 크다. 최근 흉기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한 남성에 경찰이 테이저건 대신 권총을 겨누자 남성은 즉각 엎드려 20초 만에 제압됐다. 목표물을 조준할 때 빨간색 빛(점)이 발생하는 레이저 표적지시기도 권총에 장착해 시각 효과를 더할 계획이다.”

경찰관 정당방위 입증 어려워

그러나 문제는 총이 아니라 법규다. 경찰이 쏜 총에 용의자가 숨진 경우 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14건뿐이다. 일선 경찰관 A씨는 “현행법 체제에선 저소음 권총 줘봤자 쓸 경찰 없다. 솔직히 세금 낭비 같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신림역 부근에서 4명을 살상한 조선이나 분당에서 14명 사상자를 낸 최원종 등 흉기 난동자에 총 꺼내 든 경찰을 본 적이 있나. 내가 현장에 있었어도 못 꺼낼 것 같다. 대퇴부 쏘면 된다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흉악범 대퇴부를 맞추기 쉽지 않다. 실수로 눈이라도 맞춰보라. 상부에서 규정대로 쐈는지 엄격히 따질 텐데 부담이 크다. 형사 책임이 면책돼도 민사 소송이 걸리면 경찰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될 우려가 있다. 실제 테이저건을 썼다가 소송에 걸린 경찰관에 동료들이 돈을 모아 지원하기도 했다. 사격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사격 훈련은 1년에 딱 4번 한다. 회당 30발이니 연간 120발 쏘면 끝이다. 경찰이라고 모두 총을 잘 쏘는 것은 아니다.”

경찰 직무집행법의 한계

결국 경찰의 면책범위 확대가 강력범 제압의 요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개정된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은 경찰이 살인 등 강력범죄나 가정폭력 등의 긴급 상황시 직무를 수행하다 타인에 피해가 발생해도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면받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경찰이 자신감 있게 강력범죄를 제압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4선·인천 동·미추홀을)은 지난달 29일 흉기를 소지한 특수공무집행 방해죄와 특수 협박 범죄를 형사 면책 범위에 추가하고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는 때’란 전제도 삭제한 경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관의 민사 부담을 덜기 위해 범죄 제압 중 범인이 사상당할 경우 경찰 아닌 국가에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도 발의했다”고 했다. 형사는 물론 민사 책임도 경찰 아닌 국가가 지도록 일원화하는 골자란 것이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 입장에서도 국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전액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정안은 경찰 외에도 위험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공무원의 민사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했기에 관계 부처 조정이 필요하다”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선 개정안이 국민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라 경찰 면책과 인권 보호의 균형점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저위험 권총도 인명 살상 위험”

경찰은 저위험 권총이 보급되면 일선 경찰들이 범인의 대퇴부 아래 부위만 사격하고, 피격자가 다칠 경우 병원 후송 등 긴급 조치를 하도록 지침을 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위험 권총이라도 노약자가 맞을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해양경찰은 2012년 중국 불법 월경 어선을 단속하면서 미국산 비살상용 고무총을 썼다가 중국 선원 1명이 숨져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마약 사범은 각성 상태에서 통증을 못 느껴 저위험 권총을 쏴도 제압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저위험 권총으로 허벅지를 쏴도 하지 동맥을 관통하면 과다 출혈로 숨질 수 있다. 70㎏ 성인 혈액 총량은 5L 정도인데 그중 30%를 손실하면 과다출혈 위험이 있다. 구급대 도착 전에 경찰이 지혈해야 한다. 따라서 저위험 권총 휴대 경찰관에게 지혈법을 교육하고 출동시 지혈대 등 응급 도구를 지참하게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