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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민주당을 살리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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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현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여당은 대통령의 당이다. ‘친윤’, ‘친문’, ‘친박’ 같은 표현처럼 대통령쯤은 되어야 계파를 거느린다. 반면, 야당은 당 대표의 당이다. 당직을 부여받은 이들이 ‘친명’이니 ‘친낙’이니 계파가 된다. 원외에선 공천을 바라고 계파를 자처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다만 그 결속력은 지도자가 당권을 쥐고 있을 때만 유지된다. 국정 운영의 경험을 공유한 대통령의 계파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패배 직후부터 당 대표 출마를 기정사실로 했던 건 그래서일 거다. 그는 동교동계나 ‘친노’, ‘친문’ 같은 대통령 계파에 속한 일이 없었다. 대선 경선 전까지 ‘7인회’니 ‘8인회’니 했던 건 실제 그를 돕는 의원 숫자가 딱 그 만큼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대신 그의 주무기는 SNS였다. 그는 계파 대신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읽었다. 그래서 ‘친문’들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자화자찬할 때도, 이 대표만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2020년 9월)고 적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에 질린 이들도 그 모습에 다시 ‘1번’을 찍었고, 그래서 0.73% 포인트 차 박빙 승부가 펼쳐졌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대선 패배를 납득하지 못한 지지자들이 ‘개딸’이라는 신종 팬덤을 형성했고, 그에 올라탄 이 대표는 정치적 고향 성남 대신 아무 연고 없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국회 입성 뒤에는 ‘사법 리스크’ 우려에 귀 닫은 채 계획대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그러고선 직접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개딸 팬덤을 제도화하는 데 주력한 뒤, 검찰의 2차 구속영장 청구를 앞둔 시점에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21일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가결과 부결이라는 갈림길에 선다. 부결로 가면 ‘방탄 정당’ 오명을 뒤집어쓴다. “저를 향한 정치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 대표 역시 식언(食言)한 게  된다. 가결의 길에는 사나운 개딸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당이 지지자에 물어뜯기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 “당이 인질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 대표 스스로가 당론으로 가결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그러면 ‘방탄의 늪’도 개딸의 날카로운 이빨도 피할 수 있다. 이미 이 대표 자신이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 대표는 2020년 7월 대법원 판결 직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불안감을 표출하면서도 “검찰은 믿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 한번 그 신뢰에 몸을 던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