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인줄 알았는데 인공조명…길잃은 새끼 거북이 굶어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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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항공우주국이 2012년 배포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위성사진. 야간 인공 조명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공=NASA, 로이터]

미항공우주국이 2012년 배포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위성사진. 야간 인공 조명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공=NASA, 로이터]

바닷가 모래밭에서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은 부지런히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
포식자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따가운 햇볕과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서다.

바닷물에 비친 달빛인 줄 알고 그 빛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지만, 그게 사람들이 설치한 육지의 인공조명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탈수나 굶주림으로 죽는 처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해안 지역에서 점점 늘어나는 인공조명이 해양 생물의 생활사에 큰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생존까지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항 앞바다 오징어 잡이 어선들의 불빛. 중앙포토

부산항 앞바다 오징어 잡이 어선들의 불빛. 중앙포토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밤바다에 불을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야간 인공조명은 해양 생물에 다양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빛 신호 주고받는 해양 생물 

인공조명이 해양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그림. 바닷새들의 방향 감각에 영향을 주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의 이동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생물형광을 내는 심해 생물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다. [자료; Aquatic Conservation: Marine and Freshwater Ecosystems, 2023]

인공조명이 해양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그림. 바닷새들의 방향 감각에 영향을 주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의 이동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생물형광을 내는 심해 생물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다. [자료; Aquatic Conservation: Marine and Freshwater Ecosystems, 2023]

미국 코넬대학 연구팀은 최근 '수생 보존: 해양 및 담수 생태계(Aquatic Conservation: Marine and Freshwater Ecosystems)' 저널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육상 생태계뿐만 아니라 연안 생태계도 빛 공해, 즉 야간 인공조명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야간 인공조명 (artificial light at night, ALAN)은 플랑크톤에서 산호초, 어류, 고래까지 거의 모든 해양 생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양 생태계에서 빛은 중요하다.

햇빛보다는 약하지만, 달빛과 별빛은 해양 생물에게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한다.
생물 자체가 내는 생물발광(bio luminescence)도 어두운 환경에 사는 해양 생물에게 중요한 신호이고, 종종 의사소통에 사용된다.

다양한 해양생물은 저마다 빛을 감지하는 기관을 갖고 있고, 고유한 빛의 세기나 파장 등에 반응한다.
또, 생활사(Life-cycle) 중 특정 시기에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는 파란색과 노란색 빛에 대해 높은 감도를 갖고 있다.

인공조명 생물 혼란 초래 

제주 서귀포시 중문 색달해변에서 해양수산부 주최로 열린 '바다거북 방류 행사'에서 인공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들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서귀포시 중문 색달해변에서 해양수산부 주최로 열린 '바다거북 방류 행사'에서 인공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들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야간 인공조명은 달빛과 별빛, 생물발광을 덮어버려 생물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인공조명 노출은 해양 생물의 성장률과 생존율, 번식 성공률을 감소시킨다.

바닷새는 서식지 근처의 밝은 빛에 노출되면 방향 감각을 잃게 되고, 체력 저하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기도 한다.

바다거북의 경우 암컷은 알을 낳기 위해 조용하고 어두운 곳을 찾지만, 인공조명 탓에 번식 조건이 나쁜 다른 해안으로 옮겨간다.

부화한 새끼 거북은 지평선에서 가장 밝은 빛(자연적으로 물에 반사된 천체 빛)을 향해 이동하도록 적응되었기 때문에 도시의 인공조명에 유인된다.

동물성 플랑크톤은 인공조명을 피해 수층 더 깊은 곳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인다.

먹이 물고기는 어둠 속에서는 안전하지만, 인공조명이 있으면 포식자의 추적을 피하기 어렵다.

인공조명의 영향은 먹이사슬을 통해 고래 같은 대형 포유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공조명 영향 갈수록 확대 

지난 5월 29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비비드 페스티벌(Vivid Festival) 당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돛에 조명이 켜졌다. 인공 조명의 영향을 받는 연안 면적이 해마다 2.2%씩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29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비비드 페스티벌(Vivid Festival) 당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돛에 조명이 켜졌다. 인공 조명의 영향을 받는 연안 면적이 해마다 2.2%씩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현재 전 세계 해양의 약 200만㎢ (남한 면적의 약 20배)가 수심 1m 기준으로 야간 인공조명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매년 2.2%씩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밤하늘 별을 가리는 산란광(散亂光, Sky glow)은 이제 전 세계 해안선의 22%에서 감지되고 있다.

연안 도시의 불빛뿐만 아니라 해양광산, 어업, 운송, 에너지 개발처럼 다른 광원은 더 먼 바다에서도 밤을 밝힌다.

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은 일반적으로 기존 조명보다 더 짧은 파장의 빛을 갖고 있고, 물속 더 깊은 곳까지, 수심 30m까지도 침투한다.

연구팀은 "인공조명이 해양 생물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래류나 기각류 등 해양 포유류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고, 심해 생물이나 해양 식물에 대한 연구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양 소음 등 다른 감각 오염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아직은 미흡한 상태다.

연구팀은 "해양생태계 보호구역이나 빛 공해 방지를 위한 '국제 밤하늘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이 해양 생물의 다양성과 건강을 보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고기잡이를 금지하는 금어기를 지정하는 것처럼 해양 군집의 중요한 특정 시기에 빛 공해를 줄이도록 유도하거나 야간 조명으로 가능한 한 적색광을 사용해 인공조명이 물속으로 깊이 침투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부산 감만부두 야경. [중앙포토]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부산 감만부두 야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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