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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등지고 한반도 비핵화 못해, 외교 공간 열어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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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05면

위성락 사무총장은 “북·러 정상회담이 한·러 관계엔 적신호가 됐다”며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위성락 사무총장은 “북·러 정상회담이 한·러 관계엔 적신호가 됐다”며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험한 거래가 한반도 안보 전망을 ‘시계 제로’의 상태로 흔들어 놓았다. 한국 외교와 안보는 어떤 전략을 짜고 어떤 행동을 펼쳐야 할까.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 사무총장을 14일 만나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던진 과제와 대응전략을 물었다. 그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2009~2011년)과 주러시아 대사(2011~2015년)를 지냈다.

지난 13일 북·러 정상회담을 총평하면.
“ 김정은과 푸틴도 언급했듯 북·러는 전략적 협력관계가 됐다. 미국이라고 하는 큰 실체에 대항해야 하니까 서로 간에 협력 실적이 많지 않은데 전략적 관계를 만든 거다. 북한이 무기를 주고 위성을 받는다는 해석이 많은데 정확히는 무기를 주고 현금이나 물자를 받을 것이다. 우주 기술은 러시아가 돕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으로선 포탄을 보내고 러시아에서 식량, 에너지, 비료를 받아오려 할 거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등으로 고립됐던 북한에는 놓치기 어려운 매력적인 딜(deal)이다. 다만 북·러는 공개적으론 무기 거래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한국에선 북·러 정상회담의 의미를 다운플레이 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가령 이번 회담이 타산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식의 해석이다. 우리의 희망적 사고라 할 수 있다. 원래 한국이 러시아와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였는데 이제 형해화되고 북·러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바뀌고 있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한반도 지역 정세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장차 한·미·일 대 북·중·러로 대립 구도는 훨씬 심화할 거다. 북핵 문제를 국제 협력으로 푸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북·러 관계는 극적으로 격상이 됐고, 한·러 관계엔 적신호가 됐다.”
가장 우려되는 게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술 이전이다. 탄도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전수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간 나로호 1단 추진체 개발 등 한국이 러시아와 했던 우주·국방 기술 협력이 북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북·러는 평화적 이용을 강조할 거다. 이를테면 위성의 3단계 킥모터(kick motor, 발사 궤도에서 최종 궤도로 방향을 바꾸기 위한 추진체) 등 ‘특정 위성 기술만 이전한 건 제재 위반이 아니다’라고 국제 사회에 우길 텐데, 위성을 쏘아 올리는 발사체가 결국 미사일 체계와 같기 때문에 해명은 안 된다. 재진입 기술은 위성에는 안 쓰이고 탄두에만 적용하는 기술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단은 어렵지만, 재진입 기술까지 북한에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진 않는다. 러시아는 과거부터 핵·미사일 기술의 국제 비확산에 관한 한 비교적 충실하게 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단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돌발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기술 이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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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워싱턴선언(올해 4월 26일), 한·미·일의 캠프 데이비드 원칙(8월 18일) 등으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강화했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한국은 워싱턴선언의 내실화에 집중할 때다. 미국과 확장억제 협의체를 통해 억제력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효과를 내게끔 해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체 핵무장론 같은 강수를 둬선 곤란하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비확산 공약을 손상하고 한·미 관계를 악화하는 역효과만 난다.”
정치권에선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대응으로 넘어갈 순 없고 추가 제재든 외교적 대응이든 한·미가 함께 응수를 해야 한다. 살상 무기 지원 압력도 커질 거다. 그간 서방은 ‘한국도 지원하라’고 권유하고 압박도 가해 왔는데 우리가 응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이 더는 피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 수 있다. 이때는 러시아가 한국을 제재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가면 팃포탯(Tit-for-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긴장 고조로만 가면 안 된다. 중·러와 외교 공간을 열어 둬야 하는 이유다”
악순환에 안 빠지려면 어떡해야 하나.
“일본을 봐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김정은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자국민 납치 문제라는 일본만의 대북 의제가 있어서 가능한 거다. 미국이 손뼉은 못 칠지언정 일본에 할 말은 없다. 상반되고 상충하는 목표를 조화시키는 게 외교다. 한국은 비핵화, 한반도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일 등 더 큰 과제가 있다. 이건 중·러를 등지고는 못 한다.”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까.
“일각에선 ‘북·러 정상회담으로 중·러가 틀어질 수도 있다, 한국이 중국을 활용하자’는 말도 나오는데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중국은 현 상황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중국도 곧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거다. 큰 흐름을 봐야 한다. 중·러의 최우선순위는 미국이란 숙적을 상대로, 이 지역의 미국 주도 안보 구도에 도전하는 것이다. 중·러 관계는 전례 없이 최고다. 러시아가 먼저 북한을 끼고 움직였을 뿐 북·중 관계도 북·러와 유사하게 갈 개연성이 더 높다. 장차 북한이 중국 무기를 사들여 러시아에 되파는 중개 무역도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이 러시아 무기 공급의 숙주가 되는 건데, 북한도 이문이 남는 장사다. 북·중·러 군사 훈련도 북한이 동의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한·중 혹은 한·중·일(한·일·중) 정상 외교를 활용하는 건 어떤가.
“정상회담은 하드웨어인데 더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 즉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는 외교 전략이다. 한국은 지금 대미, 대일, 한·미·일만 있고 대중, 대러 정책이 안 보인다. 냉전 시기 미·소는 극한대립을 하면서도 핵 군축으로 공통의 이해를 추구했다. 북·중·러와 한·미·일은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라는 이해관계가 있다. 미국과의 공조 수위는 어디까지고, 중·러와 외교 공간은 어디까지 있는지 ‘한국형 좌표’를 먼저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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