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112개국 사형제 완전 폐지…중·일 등 55개국은 유지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57호 09면

‘묻지마 흉악범’이 불러낸 종신형·사형제 논쟁

사형제 폐지만 3번을 했다. 필리핀의 얘기다. 사형제 부활의 불씨가 켜질 때마다 재도입이 추진됐다. 최초로 1987년 폐지해 6년 뒤 재도입했고, 다시 7년 뒤 폐지, 3년 뒤 재도입을 되풀이했다. 극악 범죄가 증가하는데다 정치적 쿠데타 미수가 이어질 때마다 혼란 막기용으로 사형제 카드가 다시 등장했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일반범죄에 대한 사형제 폐지국을 유지 중이지만 부활의 불씨는 여전하다. 2020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사범 단속 과정에서 6000여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사형제 완전 폐지국이라도 흉악범죄나 테러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부활 여론이 고개를 든다. 정치적 반대자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형제가 고착화되기도 한다. 29년째 장기집권을 이어오고 있는 벨라루스가 그 예다. 유럽대륙 국가 중 유일하다. 그런 여론을 뚫고 사형제 폐지를 이어온 국가의 비결은 국민적 합의를 이룬 데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해 기준 세계 사형제 완전 폐지국은 112개국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폐지했다. 일반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곳은 9개국, 사형제 폐지를 헌법에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인 곳은 23개국이다. 10년째 사형 미집행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사형제를 유지해 온 곳은 중국, 일본, 미국 등 55개국이다.

사형제 폐지국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폐지 과정에서 비슷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엔 ‘헌법 조항 명시’부터 이뤄진다. 대개 즉시 폐지보다는 점진적 폐지 과정을 거치는데, 사형 선고가 가능한 범죄 수를 줄이거나 사형집행에 예외를 두는 식이다. 영국을 예로 들자면, 사형 폐지 전부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경우를 축소해왔다. 1776년엔 220개였다가 1861년엔 살인죄, 대역죄, 간첩죄 등 다섯 가지로 줄였고, 1957년엔 살인죄만 남겼다가 1969년엔 폐지하기에 이른다.

관련기사

국민투표의 방식은 국민합의 과정에서 자주 보인다. 스페인이 대표적인데, 1932년 사형 폐지 후 2번의 재도입 끝에 60여년 만에 완전 폐지를 이뤘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국민투표다. 1978년 국민투표에 의해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면서 군형법을 제외한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사형을 금지하는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폐지 수순을 밟았다.

국가 리더십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미국에선 사형제 폐지에 주지사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미국은 각 주마다 사형제 존치여부가 다른데, 사형 폐지법안에 대해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네티컷, 뉴멕시코, 워싱턴주를 비롯해 최근엔 버지니아주도 주지사가 폐지법안에 서명하기로 선언하면서 23번째 사형폐지주가 됐다. 미국은 사형선고가 2011년 85건에서 2019년 43건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점차 폐지하는 분위기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평균 살인율을 보면 사형제 존치주는 7.3%인 반면 폐지주는 5.3%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는 필수다. 사형 폐지국가는 대개 종신형부터 도입한다. 독일은 절대적 종신형을 폐지하고 최저 복역기간을  둬서 복역을 마치면 가석방이 가능토록 한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했다. 응보이념보다 재사회화, 인간존엄의 중요성에 무게를 뒀다. 영국은 범죄에 따라 최저 복역기간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도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상대적 종신형 도입 추진 여론이 일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