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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 범죄자도 언젠가 사회 복귀, 무고한 참변 막을 길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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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08면

‘묻지마 흉악범’이 불러낸 종신형·사형제 논쟁

최근 묻지마 흉악범죄가 이어지면서, 범죄자 처벌 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추모 공간. [뉴시스]

최근 묻지마 흉악범죄가 이어지면서, 범죄자 처벌 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추모 공간. [뉴시스]

“강력한 처벌 제도가 있었다면, 제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들을 잃은 연모(61)씨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단장지애(斷腸之哀). 자식을 잃은 슬픔은 내장이 끊어지는 아픔 같다고 했던가. 그러나 느닷없이 일상에 찾아온 ‘묻지마 범죄’는 어떤 말보다 가혹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연씨가 운영하는 공업사에서 매일같이 함께 일하던 아들(33)은 지난해 10월 2일 벌어진 이른바 ‘안산 월피동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등교하던 길이다. 여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아들에게 근처에 사는 30대 남성이 “시끄럽다”며 흉기를 휘둘렀다. 가해자는 양극성 정동장애 등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징역 20년. 심신미약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충동적인 범행이고 초범이란 이유였다. 지난달 22일 열린 항소심에선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연씨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인권은 회복이 불가능한데, 가해자 인권만 바라보고 초범이니 충동적이니 하며 언젠가 사회로 복귀시키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신질환 등 이유 부당한 감형 논란

“피해자 보호와 지원보다 가해자 인권이 더욱 무겁게 다뤄지는 현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가해자에 대한 부당한 감형 등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건국대 영상영화학과 2학년 이시윤(21)씨는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피해자 보호를 요구하는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의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도중 식사를 위해 서현역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한 김씨처럼 누구나 예고 없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지난 8월 서현역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김혜빈(20)씨의 1년 선배다. 이씨는 “유족들은 피해자가 생각나 학우들의 연락도 잘 받지 못하고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가해자는 언론사에 반성문을 보내는 등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예고 없이 찾아온 참변. ‘묻지마 흉악 범죄’가 연이어 벌어지자 범죄자 처벌 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피해자 유족들은 입을 모아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금전 문제나 치정, 원한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 강력한 처벌 말곤 예방할 길이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또 다른 서현역 사건 피해자인 60대 여성 A씨의 유족은 지난 14일 첫 공판에서 “이번 사건을 통해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무고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 대다수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형제는 1997년 이후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폐지됐지만, 사형제 유지 여론은 여전히 다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사형제 유지를 지지하는 응답은 69%로 반대(23%)의 세 배에 이른다.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여섯 차례 진행된 이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폐지 의견이 유지 의견을 앞선 경우는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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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족이나 국민 여론과 달리 사형 제도가 부활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사형 집행이 범죄 발생을 줄인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유엔에선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조사 끝에 “사형 제도가 범죄율 감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국내에서도 사형제가 범죄 발생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사형제가 있건 없건 범죄는 일어난다는 얘기다.

피해자 유족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들은 “사형 선고마저 실종되면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가해자가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복역 후, 유기 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을 넘어선 뒤 잔여 형기가 10년 이내일 경우 가석방이 가능하다. 반면 사형수는 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가석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안산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인 연씨는 “피해자 유족들이 아무리 떠들어 봐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사형 집행을 하지 않더라도 살인 등 흉악범죄자는 사형을 선고해야 인명을 해치는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 선고도 안 해 흉악범 경각심 못 줘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신이 아닌 이상 범죄자가 정말 반성하고 교화됐는지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단 점도 피해자 유족들이 사형 선고를 요구하는 이유다. 신림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22)의 사촌 형이라 밝힌 유족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유족들은 피의자가 반성 없는 반성문을 쓰며 갱생을 가장한 끝에 감형을 받고 사회에 나올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피의자가 전과 3범에 소년원을 14번 오갔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을 다시 사회에 풀어놓는 판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사형제 존폐와 별개로 사형 판결 실종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이 나온 것은 2015년 8월이 마지막이다. 일반 법원보다 처벌이 강한 군형법을 적용하는 군 법원에서도 2016년 임모 병장 GOP총기난사 사건 선고 이후 사형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7년간 사실상 법정최고형은 무기징역이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우리 법원이 사형 선고에 인색하다 보니, 한번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범죄자가 또다시 살인을 저질러도 무기징역에 그치는 탓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3일 대법원에선 강도살인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공주교도소에 수감 중 또 다른 수용자를 살해한 20대 남성 이모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바 있다.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면 무기징역 이하의 형을 받게 된다.

급기야 사법부가 조롱받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8월 창원지법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던 60대 남성이 “시원하게 사형 집행을 한 번 딱 내려 달라”며 재판부와 담당 검사를 조롱한 것이다. 살인과 살인미수 등으로 이미 30년 가까이 복역한 이 남성은 출소하고 1년여 만에 또다시 동거녀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자의 인권을 얘기하는 것도 범죄자가 다시 죄를 짓지 않아 선량한 시민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며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인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법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지난달에는 법무부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입법 예고했다. 법조계에서도 도입에 무게를 두는 상황이다. 법무부가 입법예고 뒤 의견조회를 요청한 대한변호사협회에선 최근 찬성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도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부 여당은 지난달 22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각각 지난 8월과 7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다만 법원행정처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선진국에선 위헌성이 있다며 없애는 추세라는 지적이다. 장영수 교수는 “사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모두 없는 독일에서도 기한 없는 보호감호 같은 대안을 마련해두고 있다”며 “사형제 폐지를 먼저 결정한 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의하면 그 사이 흉악 범죄자에 대한 영구 격리 가능성에 공백이 생겨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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