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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형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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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09면

‘묻지마 흉악범’이 불러낸 종신형·사형제 논쟁

11일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 위원은 범죄자 교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11일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 위원은 범죄자 교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형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신호를 주는 게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입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사형제 부활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등 처벌 강화 여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나 유족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형벌이 무거워진다고 범죄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위원은 오랜 기간 사형제를 연구한 법학자로  지난 2019년 사형확정자 33명을 인터뷰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과거엔 형벌의 목적으로 응보와 예방을 꼽았지만, 현대 형사사법 체계에선 예방에 대해 더 무게를 둔다”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거운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묻지마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형제 부활 등 처벌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묻지마 흉악범죄로 묶지 말고 구분해서 봐야 한다. 예컨대 서울시 관악구에서 발생한 증오범죄,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에서 벌어진 조현병 환자의 범죄, 서울시 관악구 등산로에서 벌어진 강간살인 범죄 등은 각각의 원인이 모두 다르다. 증오범죄, 조현병, 성범죄 등 원인이 다르면 대책도 달라야 하는데, 처벌 수위를 높이면 일괄적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건 단순한 생각이다.”
사형 등 강한 처벌이 범죄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나.
“사형과 범죄율 간 관계는 명확하게 규명한 연구 결과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이 불가능하다. 범죄 발생은 사회·문화·경제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받는 데 이를 일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사형제 폐지 후 오히려 살인 사건이 줄었다는 통계도 있고, 사형 집행으로 살인 사건이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유엔에선 사형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범죄율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무거운 처벌이 범죄 발생을 줄일 것이라 여기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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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은 처벌을 두려워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국내 사형수 33명을 만나 직접 물어봤을 때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사형의 존재가 아니었다. 범행을 저지를 때 사형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형수 중에서 일부는 자신은 사형이 합당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범행을 저지를 때 사형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다른 형벌을 강화한다고 두려워하겠나.”
그럼 어떤 게 가장 두렵다고 했나.
“체포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거운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범죄 검거율은 지난 2017년 85%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하락해 2022년 76.5%까지 떨어졌다. 범죄자 4명 가운데 1명은 검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비 범죄자가 나도 안 잡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문제다. 강력한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범죄를 예방한다.”
확실한 처벌은 어떤 의미인가.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히고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범죄자들에게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범죄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체포해야 한다. 체포되면 예외 없이 누구나 처벌된다는 신호를 분명히 해야 한다. 범죄자가 나도 예외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도록 하면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없애는 게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란 얘기다.”
징역형의 가석방은 예외 없는 처벌에 반하는 것 아닌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가석방은 체포된 뒤 처벌을 받은 뒤의 일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란 얘기다. 교도소의 역할은 단순히 범죄자의 격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범죄자를 교화시켜 다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 그런데 가석방이 없다면 교화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문제인가.
“현장에서 만나 본 교도관들은 가석방 없는 징역형이 도입되면 사형수나 수형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제재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희망을 잃은 수형자들이 교도관의 지시를 따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 본 사형수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도 희망이었다. 언젠가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교도소 안에서 변화도 하고 반성도 한다는 얘기다. 재범의 위험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격리하는 게 맞다. 그러나 다시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교화하려면 가석방이란 희망이 필요하다.”
피해자 유족들은 살인 범죄에 한해서라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영구격리를 호소한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지금도 가능하다. 20년 뒤면 무기징역도 가석방 심사를 해준다고 하지만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교화 가능성을 판단한다. 교화 여부를 두고 가석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모두 가석방해준다는 게 아니다. 현행 무기 징역 안에서도 가석방 없이 운영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형법에 넣어봐야 실익은 없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편하게 생활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예전처럼 교도소 내에서 사형수를 두려워하는 시선이 많이 줄었다. 사형수니까 다른 수용자들 위에 군림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 교도소 생활도 외부로 알려진 것보다 굉장히 열악하다. 직접 만나본 사형수의 절반은 작은 공간에서 혼자 지냈다. 이들은 평균 60대 남성인데 대부분 이혼한 상태였다. 가족들로부터도 고립되고 교도소 안에서도 고립돼 생활한다. 더구나 사형수들은 미결수 신분이라 기결수에게 부여되는 교정·교화 심리 프로그램도 받지 못한다. 일반 수용자들에게 하루 한 시간씩 주어지는 운동 시간도 사형수들은 30분에 불과하다. 국민 세금으로 먹여 살린다고 하지만 교도소에 들어가는 경비 가운데 사형수들에게 들어가는 직접비용은 연간 250만원가량이다. 편하게 생활한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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