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두고 서방 외신들은 13일(현지시간) ‘왕따 국가·불량 국가들의 만남’, ‘잃을 것 없는 만남’ 등의 평가를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두 정상의 끈끈한 브로맨스에 주목하며 2024년 미 대선 결과에 따라 국제사회가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도 했다.
“불량한 왕따 국가들끼리의 만남”
영국 BBC 방송은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모두 나라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불량 국가’라는 비난과 함께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으며, 미국 헤게모니를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을 두고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왕따(pariah)”라고 표현했다.
이런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두 정상이 회담을 통해 실질적ㆍ상징적 수확을 모두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컨설팅업체 LMI의 정책 부문 책임자 수 김은 BBC에 “이번 회담으로 러시아는 포탄과 미사일을 구했고, 북한은 그 대가로 식량 지원을 받고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얻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줄어들고 있는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북한 무기를 확보하려 하고, 북한은 궁지에 몰린 자국 경제를 부양하고 위성과 핵 프로그램 선진 기술을 공유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북한은 수년간에 걸친 제재와 코로나19 고립으로 재정적 어려움과 식량 불안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경제적 구명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메시지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BBC는 “러시아가 북한, 중국에 3자 해상 훈련을 제안한 것은 한미일이 한반도 주변에서 훈련하고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에 정면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도 의지할 동맹이 있음을 미국과 한국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NYT도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러시아를 핵무장을 한 북한에 더 가까워지게 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푸틴-김정은 ‘삼각 브로맨스’ 부활하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이가 가까웠던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미·북·러 삼각 협력을 꾀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행보가 한미일 안보 협력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들여온 사안과 대비된다”며 “러시아의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12일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EEF)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형사 재판을 받는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박해”라고 옹호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미국의 정치·사법 체계를 비난한 푸틴 대통령에 사실상 동조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는 상황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며 김 위원장에 대해서 “매우 똑똑하고 뛰어난 협상가”라고 찬사를 보내고 등 김 위원장의 친서를 자신의 마러라고 저택에 가져가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왔다.
하지만 북러 관계가 ‘브로맨스’ 보다 ‘정략결혼’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BBC는 “최근의 북러 ‘밀월’은 공동의 적이 있는 2023년 지정학적 현실이 배경이 된 ‘편의에 의한 관계’라고 규정했다. 서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만났지만, 국제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러시아로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등 기존 국제질서와 정면충돌하면서 북한과 가까워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러시아가 핵잠수함과 탄도 미사일 기술 지원 요청엔 선을 그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라이프-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는 BBC에 “필사적인 전쟁 기계도 군의 보석을 낡은 군수품과 교환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곤란해진 중국, 속으론 반색?
북러 정상회담으로 중국이 복잡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진단도 있다.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김 위원장이 북러 관계가 북한 대외정책의 1순위라고 말한 것을 두고 “중국을 고의로 모욕하고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이 북러 정상회담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핵ㆍ미사일을 개발한 북한과 더 가까워지는 걸 보이면 국제사회 비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기 거래만으로 한정해 본다면 북러 회담이 중국에도 손해될 게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더타임스는 “중국은 푸틴이 패배하거나, 혹은 패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지도록 놔둘 수 없다”며 “김 위원장이 그런 결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