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승진… 동기중 선두주자/새 대법원장 지명 김덕주대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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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단력 빠르고 원만한 일처리 정평/“5공때 정치규제 참여” 일부 부정적
90년대 사법부를 이끌어갈 새 대법원장(11대)으로 내정된 김덕주 대법관(57)은 동기생들은 물론 고시선배들까지 제치고 법조인 생활 35년 동안 일관되게 선두주자로서의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66년 동기생들이 평판사일 때 조진만 당시 대법원장에 의해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로 발탁됐으며 40세 때인 73년 선배들을 제치고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에 의해 서울고법 부장판사 겸 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승진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법원의 요직은 모두 거쳤으며 86년 4월 대법원 판사를 물러나 2년여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다 88년 7월 대법관으로 재임명돼 현재 대법관 서열 1위.
김 대법관은 그 동안 법관으로서의 능력과 법원 행정가로서의 자질,개인적 신망을 일관되게 인정받아온 것이 특징.
법원의 한 고위간부는 『대법원장으로서 손색이 없는 능력과 인품을 갖춘 분』이라며 『그의 법관 경력에서 나타나듯 이미 여러 각도에서 검증을 마친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김 대법관에 대해 판단력이 빠르고 논리정연하며 원만한 성품에 매사를 유연하게 처리해나간다고 평하고 있다.
그는 「판사들의 개인별 자질이나 법원 행정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법원 간부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일부에서는 『김 대법관은 4공 때나 5공 때나 계속 양지에만 있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법부의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의견도 없지 않다.
특히 79년 9월 서울민사지법이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에 대한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직무정지를 결정했을 때 김 대법관이 법원장이었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
또 김 대법관은 80년 11월 국보위 정치쇄신위원으로 임명돼 기성정치인 중 정치활동을 규제시킬 대상자 선정작업에도 참여했었다.
이 밖에도 10월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에 대한 상고심사건을 맡아 이례적으로 보석을 허가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인지 88년 대법관 13명의 국회 임명동의 표결 때 찬성 1백94표,반대 87표를 얻어 가장 많은 반대표를 기록한 대법관이기도 하다.
취미가 테니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은 즐겨하는 편이다.
부인 임현중 여사(52)와 1남3녀.<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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