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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북·러 위험한 만남 추진…미국, 일정 흘리며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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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정은(左), 블라디미르 푸틴(右)

김정은(左), 블라디미르 푸틴(右)

김정은(왼쪽 얼굴)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르면 다음 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대통령과 만나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미국과 동맹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이달 러시아 방문 계획을 검토하고 있으며 평양에서 장갑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첫 북·러 정상회담을 한 2019년 4월에도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이번에 방러가 성사되면 4년5개월 만의 만남이 된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쓸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 등을 제공받기 원하고, 김 위원장은 러시아가 원하는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인공위성과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기술 이전과 식량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미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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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북한과 러시아 간 불법적인 무기거래를 공개적으로 경고해 온 미 정부는 NYT 보도를 사실상 확인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부는 중앙일보에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에 포탄을 판매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방북했다”며 “우리는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정상급 외교 접촉을 포함해 이런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핵·미사일 고도화와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로 대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과 푸틴의 ‘위험한 거래’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미 “김정은 방러 계획·동선 다 안다”…선 넘지 마라 메시지

2019년 4월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연합뉴스]

2019년 4월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연합뉴스]

북·러 정상회담과 군사협력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뚫고 모든 분야에서 정상국가 반열에 오르고 싶은 김정은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푸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은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하고도 오는 10월 재발사를 예고할 정도로 조바심을 내비치고 있다. 당초 계획처럼 녹록지 않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황에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감행한 무장반란으로 수세에 몰렸던 푸틴도 비슷한 상황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방러가 성사되면 김정은은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다양한 상당량의 탄약과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급부로 자신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군사정찰위성이나 핵추진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력 과업과 연관된 기술 제공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협력을 강화하는 한·미·일에 맞선 북·중·러 연대 구도를 공고히 하며 얻는 전략적 이득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러가 전통적 친선을 내세우며 포장하고 있지만,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전략적 거래 성격이 짙다”며 “어느 한쪽이라도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멀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선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NYT는 김정은 방러 일정과 이동 수단, 예상 방문 장소 등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김 위원장이 장갑열차를 이용하고, 푸틴 대통령과 함께 극동연방대 캠퍼스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 소속 해군 함정이 정박 중인 33번 부두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500㎞ 떨어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지난달 말 경호·의전 인력을 포함한 북한 대표단 약 20명은 기차로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비행기로 갈아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열흘 일정의 사전답사였다고 미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북·러 정상회담 정보를 사전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돌입한 이후 이번처럼 정보 사안을 선제 공개하는 방식으로 상대방 판단과 행동을 수정토록 하는 일종의 인지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선은 넘지 마라’는 암묵적 경고를 공개적으로 내놓은 셈이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살상무기 공급은 중국조차도 넘지 않는 선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을 비롯한 서방 진영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은 이날 “우리가 공개 경고했듯 북·러 간 무기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북한이 러시아와의 무기 협상을 중단하고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판매하지 않겠다고 한 공개적 약속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김정은의 방러 계획이 이번 보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존 에버라드 전 주북한 영국대사는 BBC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신변 경호에 완전히 편집증적이다. 동선을 숨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면서 “(방문 가능성에 대한 보도 때문에) 그 방문은 이제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쇼이구 장관에게 군사협력 강화를 제의하며 푸틴 대통령 방북을 요청하자 쇼이구 장관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역제안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북·러 정상회담 관련 질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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