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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다보탑을 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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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1941~ )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 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 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오십원 동전엔 벼이삭이 있었다. 이삭 수를 세어보던 소년도 있었다. 퇴계 선생이 있었고 율곡 선생이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 정신을 접해본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세종대왕이 있었다. 지금 이렇게 우리 글을 쓰는 것은 이 위대한 왕 덕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돈에 들어 있는 인물들만큼은 잘 정한 일인 듯. 돈이 그들과 같은 정신을 싣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돈에서 배운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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