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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광풍, 과당경쟁 땐 폴리실리콘 전철 밟을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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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10면

증시 블랙홀 2차전지의 허실

한 배터리 관련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한 배터리 관련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그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던 반도체 수출이 주춤하는 사이 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가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고, 이들 기업의 주가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고 있다. 정부 지원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GSCO)에서 열린 ‘새만금 2차전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2차전지는 반도체와 함께 우리나라 전략 자산의 핵심”이라며 다각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전기차 관련 중국 업체들 줄도산 위기

2차전지 시장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만 해도 올해 1210억 달러(약 160조원)로 예상되는 시장 규모가 2028년에는 3030억 달러, 2035년에는 6160억 달러(약 815조원)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SNE리서치). 여기에 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 확산에 따른 발전 전기저장용 배터리인 ESS 수요도 증가 추세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2차전지에 대한 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정부가 2차전지 산업을 반도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키우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2차전지 산업은 반도체와는 다르다. 초격차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어서 메모리반도체처럼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 어느 순간 수요가 줄면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태양광 모듈 원자재인 폴리실리콘 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폴리실리콘 산업은 폭증한 수요 덕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과잉공급으로 생태계가 붕괴된 바 있다. 이 같은 난관을 뚫고 2차전지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선 전기차 배터리 수요와 직결된 2차전지 수요를 늘려야 한다. 지금은 전기차가 팔리지 않으면 2차전지 산업의 성장세가 꺾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7월 2차전지 수출 물량은 전월 대비 26%,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했다. 수출이 준 이유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유럽의 전기차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다행인 건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업황이 밝은 편이라는 것이다. 이상 기후 속에 내연기관차는 하나 둘 전기차로 교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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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기차 자체가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경기 영향에 따라 2차전지 산업에 충격이 전해질 수 있다. 기업과 정부는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난 30개월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던 중국의 전기차 시장도 역성장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올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한 영향인데, 주요 나라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는 추세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로 중국 전기차 ‘4소룡(小龍)’으로 불렸던 웨이마자동차를 포함해 관련 업체들은 자금난을 겪으며 줄줄이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는 재고가 쌓이고 있다. 올 상반기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50%가량 급증했으나 전년 대비 증가율은 둔화(71%→65%)했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대리점에는 팔리지 않은 차가 쌓이고 있다. 리서치회사인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전기차 재고는 9만대(92일분 미판매 재고)로 1년 전에 비해 4배가량 늘었다. 전기차 기업들의 물량 밀어내기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요 둔화 우려에 미국의 전기차 기업인 루시드는 올해 전기차 생산 목표를 당초 2만대에서 절반인 1만대로 낮췄다.

재고가 늘자 전기차 기업들이 점유율 확보를 위해 판매 가격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과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는 올해 초 모델에 따라 판매 가격을 14~28%까지 내렸다. 포드·GM도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이오닉5·6 등 주요 전기차에 대한 판매를 높이기 위해 충전요금 지원 등에 나섰다. 이로 인해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전기차 기업들의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미국 시장 1위인 테슬라만 해도 수익률이 감소했고, 다른 전기차 업체 중에는 적자를 보는 곳도 있다.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올해 하반기에는 전기차 기업들의 실적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가에서는 테슬라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필수 광물 확보 위해 정부 지원 더 필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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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전기차 제조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기차 가격 인하는 2차전지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기차 기업들이 전기차 판매 가격을 낮춰도 적정 수준의 수익을 내려면 결국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배터리를 장착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가 배터리 일부를 직접 생산하고, 가격이 싼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쓸 예정이다. 중국이 주력하는 LFP는 리튬과 인산·철을 원료로 쓰는데, 니켈·코발트·망간으로 만드는 한국의 주력 제품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수명이 길다. 반면 무게가 무겁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이마저도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2차전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4대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질막·분리막) 고도화를 통한 소재 혁신과 제조 공정 개선을 통해 원가를 인하하는 길 밖에 없다. 배터리 필수 광물인 리튬·니켈을 확보하는 데도 정부 지원이 더 필요하다. 2차전지 산업은 반도체와 비교하면 초기 투자비가 적은 대신 원재료비 비중이 원가의 68% 정도다. 그러다 보니 원자재인 메탈·리튬·흑연 등의 가격 등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에코프로비엠·포스코퓨처엠·LG화학·엘앤에프 등 양극재 4사가 올해 2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것도 메탈 가격 하락과 연관이 깊다. 대량 원료 구매 시기와 조달 비중이 상이하게 나눠지면서 각 사 실적에 영향을 준 것이다. 반도체 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해 압도적 이익 창출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핵심 광물의 높은 중국 의존도(리튬 80% 이상, 흑연 90% 이상), 낮은 진입 장벽은 수익성 확보에 큰 문제다.

2025년 무렵이면 2차전지가 조만간 우리나라의 단일 최대 수출품목인 메모리반도체 못지않은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2차전지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3.8%에 이른다. 하지만 전기차 기업들도 배터리를 직접 만들기 위해 공장을 짓고 있다. 글로벌 2차전지 생산능력은 곧 수요를 초과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 시점을 2024년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차전지가 과거 폴리실리콘 태양광 모듈처럼 과잉공급에 다른 가격 폭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폴리실리콘이나 2차전지 산업은 소재 확보와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산업 구도를 보인다. 폴리실리콘을 교훈 삼아 정부와 업계는 과당경쟁이 발생하지 않는지 지금부터 주의 깊게 살피고 대비를 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 안정을 위한 공급망 다변화, 과잉증설을 피하는 수준의 추가 증설 비용 확보,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력 격차 등 이 삼박자에 2차전지 시장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조원경 UNIST 교수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울산과학기술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 연세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금융을 공부한 뒤 행시(34회)로 공직에 진출했고 OECD대한민국정책센터 조세센터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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