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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니·볼타 20년 논쟁부터 ‘전자약’까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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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22면

우리 몸은 전기다

우리 몸은 전기다

우리 몸은 전기다
샐리 에이디 지음
고현석 옮김
세종서적

신경·근육·피부·뼈 등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부위의 세포에 전압이 있다. 과학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이 생체전기의 역사와 미래 역할에 주목한다. 생체전기 덕분에 뇌는 몸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자극을 즉시 인지하고, 명령 신호를 보내 근육과 심장을 비롯한 장기를 작동시키며, 기억과 학습도 수행한다.

생체전기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거나 전달·작동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은 아프거나,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심지어 암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 만일 인간이 생체전기를 통제하거나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질병예방과 치료, 건강유지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노화도 늦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암을 일으키는 생체전기 조절기를 발견해 이를 뒤로 돌릴 수 있게 된다면, 악성 종양을 건강한 세포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심지어 세포와 장기는 물론 손발이나 팔다리를 재생할 수도 있다. 생체전기가 만드는 ‘용감한 신세계’다.

이러한 생체전기를 이용한 첨단과학 연구·개발은 이미 시작됐다. 지은이의 참여 경험에 따르면 미군은 이미 9볼트 배터리에서 나오는 몇 밀리암페어의 전류를 머리에 통과시켜 사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험을 해왔다. 이 정도의 미약한 전류만으로도 신경계가 신호전달을 위해 이용하는 생체전기의 흐름을 바꾸고, 운동실행 담당영역을 자극해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여 전투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이를 활용하면 전기자극 헤드기어를 쓰는 것만으로 평범한 사람을 무적 전사로 만들 수 있다.

생체전기는 질병 치료 분야의 수평선을 더욱 넓히고 있다. 권투 세계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의 건강을 앗아가면서 유명해진 파킨슨병이 그중 하나다. 손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몸동작이 느려지는 증상의 파킨슨병은 운동과 호르몬 조절, 의욕과 학습 등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뇌의 도파민 세포 변성으로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난치 질환이다. 도파민을 주사해도, 뇌로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혈액뇌장벽(BBB)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치료가 제한된다.

미국 과학자들은 뇌 깊은 곳에 미세한 전극을 삽입해 전류를 흘림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는 뇌심부 자극술을 개발해 한계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이 방식을 응용해 간질·불안·강박장애는 물론 비만까지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것은 신체에 심는 ‘전자약’이다. 신경·장기·조직을 자극하는 쌀알 크기의 ‘전기 임플란트’인데 이미 일부 바이오 기업이 개발중이다. 쥐·돼지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당뇨·고혈압·천식은 물론 류머티스 관절염의 치료 효과도 확인했다.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의 길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5억4000만 달러를 벤처기업에 투자해 전기신호를 이용한 크론병과 당뇨 치료법 개발에 나섰다. 지은이는 생체전류를 이용한 이러한 새로운 질병 예방·관리·치료법을 ‘일렉트롬’이라고 부른다. 몸에 유익하고 질병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산균 군집 ‘바이옴’에 빗댄 표현이다.

사실 생체전기 연구의 역사는 18세기 이탈리아 과학자이자 ‘생체전기의 아버지’ 루이지 갈바니와 ‘전지의 아버지’ 알레산드로 볼타가 벌였던 과학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볼로냐 의대 해부학 교수 갈바니는 개구리 뒷다리에 해부도를 대면 움찔하는 것을 보고, 동물 몸속에는 전기가 있으며 이 전기가 근육을 움직인다는 동물전기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파비야 대학 실험물리학 교수 볼타는 개구리 다리를 움직인 전기는 동물전기가 아니라, 여기에 갖다 댄 두 금속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하면서 20년에 걸쳐 논쟁을 벌였다. 볼타는 동물 없이, 구리판과 아연판 사이에 소금물을 적신 헝겊을 겹겹이 쌓아올려 전기를 발생시키면서 논쟁에서 승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볼타는 연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지를 개발해 오늘날 거대한 전기 문명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전압의 단위인 볼트는 이런 업적을 남긴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갈바니는 근육과 신경전달의 패턴을 밝혀낸 생체전기 연구의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정작 문제는 이 논쟁의 여파로 전기를 다루는 물리학과 생체전기를 다루는 생물학이 학문적으로 서로 분리돼 오랫동안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서로 다른 과학 분야 간의 소통·교류 단절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1995년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암 생물학자 무스타파 잠고즈가 전기신호와 암의 관련성을 처음 제기하자, 학계는 이를 SF영화에나 나올 이론이라며 무시했다. 지은이는 생물학자는 생물에만 집중하고 전기는 물리학자나 공학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진부한 고정관념이 과학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생체전기를 이용한 의약 기술 개발을 가속화해 인류에 새로운 빛을 주려면 과학의 여러 분야가 서로 융합하면서 시너지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제 We Are Electric: Inside the 200-Year Hunt for Our Body’s Bioelectric Code, and What the Future Holds.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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