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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오만과 전쟁의 참상...군인 출신 역사가가 그린 그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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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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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함락 1945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글항아리

오는 9월 1일은 2차대전이 발발한 지 84년이 되는 날이다. 히틀러의 나치제국은 1939년 이날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후 6년이 채 안 돼 연합국 소련의 대반격으로 수도 베를린이 함락되면서 최후를 맞는다. 나치의 종말을 부른 베를린 함락에 대해 그동안 많은 책이 기록하고 증언했지만,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원제 Berlin: The Downfall 1945)처럼 디테일하게 다양한 시각으로 묘사한 저술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직 육군 장교에서 역사가로 변신한 비버는 러시아·독일·스웨덴 등 기록보관소의 자료, 개인들의 일기·회고록 등을 추가로 발굴해 베를린 최후의 날들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군 출신답게 세세한 군사적 상황과 작전, 지휘관들의 활동과 태도 등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무엇보다 전쟁의 참상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그려 큰 울림을 준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지난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에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모습. [AFP=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지난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에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모습. [AFP=연합뉴스]

이 책은 나치군의 전세가 이미 기울어졌던 1944년 말 베를린의 스산한 풍경으로 시작해 히틀러가 자살한 8일 후이자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8일까지의 가장 잔인했던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 히틀러의 오판과 오만과 허영심에서 비롯한 1944년 12월 서부전선에서의 아르덴 대공세 실패, 실력이 아니라 충성심에 따른 군 인사, 군사첩보와 현실을 대놓고 무시하는 근거 없는 무모함 등은 이미 히틀러와 나치의 몰락을 예견하고도 남는 대목들이라고 지적한다.

히틀러와 달리 지휘관들의 반론에도 귀를 기울였던 ‘스타프카(소련 최고 사령부)’의 수장 스탈린, 필요할 때는 최고 사령부의 지시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승인된 전술 또한 기꺼이 바꾸곤 했던 소련 제3벨라루스전선군 체르냐홉스키 장군의 스토리는 흥미롭다.

무려 200만 명 넘는 독일 여성들을 무차별 강간하고 방화 등 무자비한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던 소련 붉은 군대의 만행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1941년 소련을 침공한 나치독일군이 그곳에서 벌였던 처참한 학살극에 대한 보복이라 여기기에는 너무나 심한 내로남불이었다. 이 문제는 그동안 러시아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베를린을 함락시켰던 소련은 붕괴되고 그 뒤를 이은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1년 반 넘게 전쟁을 끌고 있다. 『베를린 함락 1945』가 주는 교훈은 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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