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을 만드는 F&B 리더 ② 감태 브랜드 ‘바다숲’ 송주현 대표
청정 갯벌서 자란 감태, 100% 수작업 채취
국내외 파인다이닝과 특급호텔에서 사용
감태 원물 기반한 간편식 등 개발에 집중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소비층 확장할 것
작지만 강하다. F&B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 이야기다. 로컬에서 먹거리 혁명을 일으키고, 소비자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소비를 유도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동행을 이끈다.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틈이 세상을 바꾸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F&B 흐름을 바꾸고 있는 창업가를 만나보자.
실처럼 가느다란 ‘이것’은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청정 갯벌에서만 자라고, 채취부터 발에 떠서 말리는 과정까지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햇빛을 오래 받거나 고온에 보관하면 변질하기 쉬워 가공과 유통 과정도 까다롭다. 하지만 맛을 보면 그 까다로움이 이해된다. 녹진한 바다 향과 쌉싸래한 맛 뒤에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 오로지 이 식재료에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의 감태다.
감태의 진가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미국과 벨기에의 미쉐린 레스토랑들도 한국 감태로 만든 메뉴를 선보인다. 호주의 국민 셰프 피터 길모어는 “감태에서 화이트트러플 향이 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요리 전문매체 이터(Eater), 프랑스 다큐멘터리도 감태를 비중 있게 다뤘다. 파리의 백화점 봉막셰와 라파예트, 홍콩의 시티슈퍼에서도 감태를 만날 수 있다.
이런 놀라운 결과는, 감태 브랜드 ‘바다숲’을 만든 송주현(44) 대표의 노력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그는 10년 전, 미국 행을 포기하고 가업인 감태 사업에 뛰어들었다. 감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HACCP 인증을 받고 해외 식품 박람회, 유명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등 미식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캐비어나 트러플이 미식 식재료로 가치를 인정받듯, 감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미쉐린 셰프들이었다.
- 셰프들의 반응은.
- “감태는 다루기 까다롭고 김처럼 대량 양식해 몇만장씩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식재료다. 미식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쉐린 셰프를 찾아가 설명했다. 맛본 셰프들은 특유의 풍미를 좋아한다. 2015년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에 온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3스타 레스토랑 ‘베누(Benu)’의 코리 리 셰프는 지금도 레스토랑에서 감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스타 셰프인 일식당 카덴의 정호영 셰프, 미쉐린2스타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 밍글스 강민구 셰프도 꾸준히 감태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 미식 식재료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 성공했나.
- “절반은 성공했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파인다이닝과 롯데·신라호텔 등 특급호텔에서 바다숲 감태를 사용 중이다. 이곳에서 맛본 미식가나 연예인이 감태를 다시 찾는다. 하지만, 일상 식재료로 넘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파인다이닝의 메뉴를 그대로 따라 할 순 없으니까, 감태를 맛있게 먹는 먹을 알리기 위해 레시피를 개발하고 여러 채널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최근, 연예인들이 요리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감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 왜 절반의 성공인가.
- “감태를 미식 식재료로 인정받는데는 성공했지만, 소비자들에게 바다숲이라는 브랜드를 알리진 못했다. 10년 전에는 감태가 생소해 감태를 알리면 자연스레 바다숲이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감태의 가능성을 본 업체들이 하나둘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다. 시장이 변했다. 거대 유통과의 싸움으로 힘들지만, 괜찮다. 맛을 보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바다숲의 감태는 명인이 만든다. 차원이 다르다고 자신한다.”
바다숲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감태 명인이 있다. 바로 송대표의 아버지 송철수(79)씨다. 송씨는 1990년 무렵, 일본에서 김 굽는 기계를 들여와 시장에서 김을 구워 팔았다. 구운 김을 사려는 줄이 시장 끝까지 늘어설 정도로 인기였다. 한동안 호황이었지만, 기계가 대중화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때 송씨의 머릿속에 감태가 떠올랐다. 그 길로 감태 산지를 찾아 1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충남 서산에 자리를 잡았다. 건강한 갯벌 때문이었다. 이후 감태를 건조 김처럼 만들어 시장에 팔았다. 감태 보급을 위한 연구도 계속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2015년 서산시로부터 감태 가공분야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2022년엔 한 분야에서 업력 15년 이상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해온 우수 소공인을 뽑는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됐다.
- 감태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 “감태는 갯벌에서만 자란다. 충남 서산 및 태안 일대의 가로림만은 갯벌 면적만 91.237㎢로, 갯벌 중 내륙형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해양수산부가 국가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오염될 우려가 적다. 실제로 보호대상인 점박이물범을 비롯해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특히 수온이 낮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감태가 자라기에도 좋은데, 바닷물이 빠지면 직접 광합성을, 물이 찼을 땐 바다의 영양을 흡수한다.”
- 감태가 예민한 식재료인데.
- “다른 해조류는 종자를 밧줄에 붙여 바다에 던져 키우는데, 감태는 갯벌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양식이 불가하다. 또한 채취한 후 가공할 때도 부착 기질이 좋아 네모나게 만들기 쉬운 김과 달리, 감태는 반듯하게 먹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기도 까다롭다. 채취도 추운 겨울에만 가능하다. 12월 초반에 나온 건 연해서 분말용으로 적당하고, 색이 진하고 좋은 건 12월 중반이 넘어야 채취할 수 있다. 3월이 지나면 진한 초록색이 누렇게 변하는 데다 맛도 없다. 보관과 유통도 어렵다. 지난 겨울 채취한 감태를 영하 20도 이하의 냉동고에서 보관 중이다. 온도 변화에 예민해서, 냉동 창고는 필수다. 직사광선도 위험하다.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알루미늄 포장지를 사용한다. 거래처의 컨디션도 꼼꼼히 따져야 소비자의 식탁에 제대로 된 감태를 올릴 수 있다.”
- 100% 수작업으로 채취한다고 들었다. 생산에 어려움은 없는지.
- “현재 100여 가구의 어민이 바다숲 감태를 채취하고 있다. 어촌 마을 분들은 겨울철 비수기가 사라졌다고 좋아하신다. 지역과의 상생은 바다숲의 원칙이다. 지역 주민과 성장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산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시로부터 감태의 판로 개척과 수출 지원 등 다각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지역에 큰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꼭 잘되어 큰 도움이 되고 싶다.”
- 앞으로의 목표는.
- “품질이 뛰어난 감태 원물을 기반으로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간편식과 디저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제품이 완성되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바다숲 제품을 맛볼 수 있게 적극적으로 유통 판로를 개척할 생각이다. 또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소비층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하는 추석이나 새해 선물로 처음 생각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