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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있는데 어쩌죠?" 애~앵 소리에 20분간 전국이 멈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리나라 전역에 훈련 공습경보를 발령한다"

23일 오후 2시 귓가를 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이어 행정안전부(행안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는 방송을 통해 이렇게 알렸다. 통제소는 “국민 여러분은 즉시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나 지하시설로 안전하게 대피하라”며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비상시 국민 행동요령을 숙지해 달라”고 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원들이 민방위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지하 방공호로 대피해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원들이 민방위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지하 방공호로 대피해 있다. 연합뉴스

불 꺼진 사무실서 나와 줄지어 지하로

훈련이 시작되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는 분주했다. 각 층 복도마다 안전모와 경광봉을 들고, 확성기를 옆에 맨 안전요원들은 “지하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했다. 행안부를 비롯해 금융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여성가족부·통일부 등 청사 내 공무원들은 불이 꺼진 사무실에서 나와 줄지어 계단을 내려갔다.

대피 장소는 정부서울청사 지하 3개 층이었고, 지하 2층 탁구장에선 안전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인체 모형을 본뜬 마네킹을 활용한 심폐소생술과 줄 매듭법, 방독면(K-5) 착용 실습 교육을 했다. 실습에 참여한 공무원들은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마네킹 가슴을 힘주어 눌렀다. 한 훈련 참가자는 “이 정도로 (흉부를) 눌러야 하나”며 소방 관계자에 묻기도 했다.

일반 국민까지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민방공훈련)이 6년만에 실시된 2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정자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반 국민까지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민방공훈련)이 6년만에 실시된 2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정자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민방위 훈련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과 같은 공습 상황을 가정하고 실시됐다. 훈련은 오후 2시부터 20분 동안 공습경보→경계경보→경보 해제 순으로 진행됐고, 주민 대피와 전국 216곳 구간 자동차 통제는 15분간 실시됐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세종과 충북·경북 등 57곳 지역은 제외됐다.

오후 2시 15분이 되자 경계경보가 발령됐고, 4분 뒤(2시 19분) 훈련경보가 해제되면서 전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시청역 인근에 있던 직장인 박모(29)씨는 훈련 중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에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훈련 중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다가 안내 요원이 제지해 머쓱했다”며 “이번에 경보를 받고, 대피하는 방법을 직접 해 보니 훈련이 의미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 국민 대상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6년 만에 실시된 23일 서울시청 인근 도로가 양방향 교통통제 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 국민 대상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6년 만에 실시된 23일 서울시청 인근 도로가 양방향 교통통제 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상황처럼…일부에선 아랑곳 안 해

지난해 11월 북한이 ‘앞바다에 순항미사일을 쐈다’고 주장한 울산은 현대차와 에쓰오일 등 기업들이 밀집한 곳이다. 이날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자 울산 동구 소재 HD현대중공업은 건조 중인 선박에 적의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실제 상황이 발생한 듯 훈련을 진행했다.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선 조업 중인 직원 이동을 일시적으로 제한했고, 민방위 요원을 공장 곳곳에 배치했다.

차량 이동통제 훈련 구간인 대구 달서구 죽전네거리에선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깜박거렸다. 이에 왕복 8차선 도로에 있던 자동차 수십여대가 멈춰섰다. 한 운전자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자동차 창문을 내리자 경찰관이 “민방위 훈련 중입니다”라고 안내했다. 일부 차는 시동을 끄고,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운전자가 “요로결석 환자가 있어 급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한 차는 경찰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장기간 공백 기간 때문인지 훈련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도 있었다. 이날 광화문역 인근이나 부산시청 앞 중앙대로변 등 곳곳에서는 “통행이 제한되고 있으니 대피해 달라”는 안전요원 안내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 훈련 사이렌 소리를 듣고, 차를 멈춘 부산의 한 마을버스 기사는 “탑승한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버스를 세웠다”면서도 “6년 전엔 대부분 차를 세웠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분위기가 많이 바뀐 듯하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시민회관 대피소에서 열린 공습대비 민방위훈련에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시민회관 대피소에서 열린 공습대비 민방위훈련에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안부 장관은 접경지역 동두천에서 훈련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접경지역인 경기 동두천시에서 민방위 훈련에 참석했다. 이 장관은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적의 공습으로부터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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