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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눈썹, 현대차 룩 아니다"…그 디자인 고집한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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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대자동차 디자인 전략

현대차 연구

경영학계 대가가 10여년 전에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기업들이 15년 전에는 가격으로, 지금은 품질로 경쟁한다. 미래에는 디자인으로 경쟁할 것.” 이제 와서 보면 당연한 걸 ‘예언’이라고 했나 싶을 정도로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디자인 전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그런데 벤츠·BMW의 패밀리룩 같은 디자인이 현대차에 있을까요? ‘현대 룩’이란 과연 뭘까요?

“이름 빼고 다 바꿨다.”

신형 쏘나타부터 신형 그랜저·아반떼·코나에 이어 이번 싼타페까지. 최근 2~3년 새 현대자동차가 풀 체인지(완전 변경)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스스로 붙이는 수식어다. ‘페이스 리프트’(부분 변경)조차 풀 체인지 못지않게 싹 바뀐다. 매번 낯설게 달라지는 외관에 시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은 이에 대해 “물론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게 훨씬 클 때 과감하게 큰 변화를 시도한다”며 “과감함의 중심에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다는 변화의 목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단조롭던 현대차 디자인이 혁신적으로 바뀐 변곡점은 2018년 3월 제네바 모터쇼다. 당시 현대차는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인 ‘센슈어스 스포티니스(Sensuous Sportiness·감성을 더한 역동성)’를 제시했다. 벤츠나 아우디, BMW가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헤드램프를 통일해 각 브랜드만의 ‘패밀리 룩’을 만든 것과 달리 고유의 디자인 DNA를 공유하면서 차종별 특성에 맞는 개성과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른바 ‘현대 룩(Hyundai Look)’ 디자인이다. 이상엽 부사장은 “체스판 위의 킹과 퀸, 나이트, 비숍처럼 모이면 한 팀이 되지만, 각자 고유의 역할을 지닌 것처럼 차량마다 개성과 역할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리아, 그랜저(7세대), 코나(2세대), 쏘나타(디 엣지·8세대 부분변경) 등에서 선보이면서 흔히 ‘일자 눈썹’이라고 불리는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가 현대차의 패밀리 룩은 아닐까. 이 부사장은 “(패밀리 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극대화한 디자인이라고 보면 정확하다”며 “(기술적으로) 얇은 한 줄의 램프를 달 수 있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 현대차가 대중 브랜드이면서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현대차 ‘로고’가 없으면 현대차인지도 모를 정도로 개별 차종의 개성이 강해진 것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다. 현대차그룹의 한 전직 임원은 “무조건 새롭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어낸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철학을 갖고 디자인 일관성을 이어가야 누가 봐도 ‘현대차구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상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패밀리 룩이 뚜렷한 브랜드들은 ‘도대체 차종별 차이가 뭐냐’는 비판도 받는다. 패밀리 룩이나 현대 룩 전략 모두 ‘양날의 검’ 같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좋은 자동차 디자인의 조건은 뭘까. 여러 현대차 디자이너들은 ‘단순함’이라고 입을 모은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창의책임자(CCO·사장)는 한 강연에서 “간소화할수록(Simplifying)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네시스가 좋은 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 디자인 고문은 “제네시스는 고급 차라면 으레 화려함과 럭셔리 사양을 과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며 “제네시스 디자인 언어의 핵심은 성능과 디자인의 균형”이라고 말했다.

‘근거’와 ‘직관’ 역시 현대차 디자인 변화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이번에 새로 공개한 싼타페 5세대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코로나19 전부터 전 세계에서 SUV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분석했고 ‘차박’(차 안에서 잠을 자는 캠핑)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 부사장은 신형 싼타페를 “중형 SUV지만, 대형 SUV의 실내 공간을 가지고 있다”며 “같은 공간에서도 넓은 공간감을 구현하는 것은 현대차 디자이너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현대차그룹이 디자인 관점에서 요즘 관심을 갖는 차종은 포터다. 포터는 현대차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이면서, 동시에 수익성이 가장 낮은 차종이기도 하다. 지난 40년 동안 디자인도 한결같이 유지됐다. 이 부사장은 “포터를 훌륭하게 디자인하면 ‘포니’ 같은 아이콘이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고 말했다. 세단이나 SUV에 더해 상용차에도 ‘현대 룩’이 녹아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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