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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3) 춘향의 간드러진 아양에 마등 삼부자의 목숨이 날아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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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제갈량과 방통을 모사로 삼아 군사를 모집하고 말과 군량을 거두어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조조에게 들어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즉시 모사들을 불러 남정(南征)을 상의했습니다. 순유가 계책을 냈습니다.

순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순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유가 죽은 지 얼마 안 되니 먼저 손권을 치고, 그다음에 유비를 공격해야 합니다.

내가 만일 멀리 정벌을 떠나면 마등이 허도(許都)를 습격해오지 않을까 싶다. 전에 적벽에 있을 때도 군중에 서량병이 쳐들어온다는 헛소문이 떠돌기도 했으니 이제 예방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제 생각에는 마등에게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삼으니 손권을 토벌하라’는 조서를 내리십시오. 그렇게 허도로 유인한 후 먼저 그를 없애버리면 남정을 떠나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허허, 그대 생각이 아주 멋지오.

마등은 한나라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의 후예로 키가 여덟 자에 체격이 우람하고 모습이 기이했습니다. 하지만 품성은 따뜻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천자의 조서를 받은 마등은 맏아들 마초를 불러 상의했습니다.

조조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아버님을 부르는데 만약 가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천자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우리를 추궁할 것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기회를 이용하여 서울로 가서 기회를 보아 거사를 한다면 옛날 의대조(衣帶詔)의 뜻을 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초의 사촌인 마대가 조조의 속셈은 헤아릴 수 없다면서 해코지를 당할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마초가 다시 강하게 주장하자 마등은 허도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초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강병(羌兵)을 거느리고 서량을 지키도록 하라. 나는 둘째 마휴와 셋째 마철 그리고 조카 마대를 데리고 함께 가겠다. 조조는 네가 서량에 남아 있고, 또한 한수가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감히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마등은 서량병 5천명을 이끌고 떠났습니다. 허창성 20리 떨어진 곳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조조는 문하시랑 황규를 불러 행군참모(行軍參謀)로 삼고 마등의 군사를 위로하게 하였습니다. 마등은 술을 내어 황규를 대접했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황규가 입을 열었습니다.

복파장군의 후예인 마등. 출처=예슝(葉雄) 화백

복파장군의 후예인 마등. 출처=예슝(葉雄) 화백

저는 아버님께서 이각·곽사의 난리 때 돌아가시어 늘 원통한 한을 품고 있는데, 오늘날 또다시 임금을 업신여기는 역적 조조 놈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목이 번다하니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게.

공은 끝내 의대조를 잊으셨소?

그럴 리가 있겠소. 나도 공과 같은 생각이오.

조조가 공에게 성안으로 들어와 천자를 뵈라는 것은 기필코 좋은 뜻이 아닐 터이니 공은 가벼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내일 군사를 이끌고 성 밑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조조가 성을 나와 군사를 점검할 때 처치하면 큰일은 간단히 끝날 것입니다.

황규는 마등과 상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흥분했던 마음이 좀체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아내가 궁금하여 재삼 까닭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은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황규는 이춘향이라는 첩실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춘향은 손아래 처남인 묘택과 눈이 맞아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 묘택은 춘향을 소유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날 밤, 춘향은 묘택을 만나 황규가 분개하고 있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묘택은 춘향에게 황규를 떠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황규가 춘향의 방으로 오자 춘향은 묘택이 알려준 대로 황규를 떠보았습니다. 소설에서의 이 장면은 월탄 박종화의 필치가 구수하고 맛깔납니다.

‘춘향은 황규한테 술을 권한 후에 이불을 같이 하고 누웠다가 황규의 뺨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유황숙은 덕이 있고 어진 사람이고, 조조는 간특한 인물이라 합디다. 누가 더 훌륭한 사람입니까? 아마 유황숙이 제일이죠?

황규는 춘향이 교태를 부려 권하는 술에 얼근히 취했다. 춘향의 가는 허리를 바싹 껴안았다. 무척 귀엽고 대견했다.

너는 여자건만 바르고 간사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구나. 조조란 놈은 기군망상(欺君罔上)하는 죽일 놈이다. 언제든, 나는 이놈을 죽여서 나의 한을 풀고 말 것이다.

한번 죽여보시구려. 하수(下手)할 방법을 생각해 보셨소?

춘향이 황규의 뺨을 또 한 번 어루만졌다. 황규는 부드러운 첩의 농간에 녹아 떨어졌다. 아내한테도 말하지 아니했던 비밀한 행동을 다 털어 놓았다.

내일 마장군이 성 밖에서 조조를 청해서 군대를 사열하기로 했네. 그때 조조를 죽여 버리기로 했네. 문제없이 조조는 죽는 놈이지.

영감, 꼭 성사시키세요.

춘향은 또 한 번 아양을 떨었다.’

춘향은 묘택에게 황규의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묘택은 조조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조조는 황규의 가족을 잡아 가두는 한편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음 날, 마등 삼부자는 조조를 죽이기는커녕 자신들이 포위되어 죽거나 잡혔습니다. 마등은 너무 분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못난 선비 놈이 나의 큰일을 그르쳤구나. 내가 나라를 위해 역적을 죽이지 못했으니 이것은 바로 천운이다.

마등은 처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조조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후발대였던 마대만이 도망쳐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마등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역시 월탄의 번역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부자가 한꺼번에 꽃답고 매우니 父子齊芳烈
충성된 곧은 절개 일문에 뚜렷하다 忠貞著一門
삶을 버려 국난을 도모하고 捐生圖國難
죽음으로 임금 은혜 갚기 맹세했네 誓死答君恩
피를 씹어 맹세한 말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嚼血盟言在
간사한 자 베자던 의로운 글 오늘도 남아 있네 誅奸義狀存
서량 땅에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 西涼推世胄
복파장군의 후손되기 부끄럽지 않구나 不愧伏波孫

여인에 눈이 멀어 혈족을 해친 묘택이 조조에게 간청했습니다.

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이춘향을 일평생 아내로 삼고 싶을 뿐입니다.

오오라. 너란 놈은 한 여인에 빠져서 네 형님의 일족을 해치게 했더냐? 저런 의롭지 못한 놈을 살려뒀다가 어디에 쓰겠느냐? 즉시 이춘향과 함께 끌어내다 저잣거리에서 목을 쳐버려라!

사욕에 눈이 멀어 죽음을 자초한 묘택. 바이두

사욕에 눈이 멀어 죽음을 자초한 묘택. 바이두

조조마저도 묘택을 인간쓰레기로 취급했으니 후세 사람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묘택은 사욕에 빠져 충신을 해쳤다가 苗澤因私害藎臣
춘향은커녕 도리어 목숨만 잃었네. 春香未得反傷身
간웅도 역시 용서하지 않으니 奸雄亦不相容恕
스스로 천하의 못된 놈이 되었구나. 枉自圖謀作小人

모종강이 말했습니다.

‘소인은 군자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뿐 아니라 소인에게도 결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소인은 소인을 꾀할 뿐 소인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설령 소인이 소인을 돕는다 할지라도 결코 소인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곳을 읽으면 소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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