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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2) 하늘이시여, 주유를 내놓고 어찌 또 제갈량을 내셨나이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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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는 제갈량을 무찌르지 않고는 아플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서천을 뺏고 싶었습니다. 손권은 아우 손유를 보내 주유를 돕도록 했습니다. 주유가 힘을 얻어 군사를 이끌고 파구에 이르렀을 때, 제갈량이 편지 한 통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시상에서 작별한 후 지금까지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나이다. 듣자하니 족하(足下)는 서천을 뺏으려 한다는데 나의 생각에는 빼앗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익주는 백성도 억세고 지역도 험준하여 유장이 비록 어리석고 나약하다고는 하나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군사를 고생시키며 멀리 정벌을 떠나 만 리 길에 군량을 수송하며 전승을 거두려 한다면 비록 오기라도 그 계책을 정할 수 없을 것이고, 손무라도 그 뒤처리를 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조조가 적벽에서 많은 손해를 보았으니 그가 어찌 잠시인들 복수를 잊고 있겠습니까? 이제 족하가 군사를 일으켜 멀리 정벌을 떠난 뒤, 만약 그런 틈을 타고 쳐들어온다면 강남은 양념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차마 앉아서 볼 수가 없어서 특별히 이렇게 알려드리는 것이니 살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주유는 제갈량의 편지를 읽고는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필묵을 가져와 손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장수들을 모아놓고 손권을 잘 모시라며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습니다.

하늘은 주유를 세상에 내놓고 어째서 제갈량을 또다시 내셨습니까?

주유는 연거푸 몇 번을 외치며 비분강개하다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탄식하며 시를 남겼습니다.

적벽에 영웅적 업적 남기니 赤壁遺雄烈
청년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노라. 靑年有駿聲
음악을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 絃歌知雅意
술잔 부딪치며 장간을 벗으로 대했더라. 盃酒謝良朋
일찍이 삼천 석의 군량을 구했고 曾謁三千斛
언제나 십만 군사를 통솔했지. 常驅十萬兵
마지막 숨 거둔 파구에 서서 巴丘終命處
가신 님 추모하려니 마음이 아프구나. 憑弔欲傷情

모종강도 주유의 탄식과 죽음 장면에서 탄식했습니다.

‘천하가 태평해도 인재는 배출되고 천하가 혼란해도 역시 인재는 배출된다. “주유를 내고 어째서 제갈량을 내었느냐”는 한탄을 보고 당시를 돌아보면, 아울러 배출된 인재가 그 두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시대에 함께 태어나서 서로를 돕는 경우를 들면 서서가 제갈량을 끌어내고, 방통이 제갈량을 돕고, 강유가 제갈량을 계승한다거나 노숙·여몽·육손·육항이 주유를 계승하고, 곽가·정욱·순욱·순유가 조조를 돕는 것 등이 모두 그러한 예이고, 한 시대에 함께 태어나서 서로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들면 유비가 조조를 만나고, 제갈량이 사마의를 만나고, 강유가 등애를 만나는 것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하늘은 한 사람의 비상한 사람을 내면 반드시 다시 비상한 사람을 내어 돕게 하고, 하늘은 한 사람의 비상한 재사(才士)를 내면 또한 반드시 비상한 재사를 내어 어렵게 만든다. 하늘은 정말 왜 조조를 내놓고 유비를 내고 왜 제갈량을 내놓고 사마의를 냈으며 왜 강유를 내놓고 또 등애를 내었을까?’

주유는 유언장에서 노숙을 자신의 후임자로 임명해 줄 것을 바랐습니다. 손권은 즉시 노숙을 도독으로 삼아 군사를 통솔하도록 하였습니다. 제갈량은 밤에 천문을 보고 주유가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시상으로 가서 주유를 조문했습니다. 제갈량이 주유의 영전에서 애절한 마음으로 제문(祭文)을 읽자 여러 장수가 감동하였습니다.

주유의 영전에서 구슬프게 제문을 읽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유의 영전에서 구슬프게 제문을 읽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이 조문을 마치고 형주를 돌아가려 할 때였습니다. 도포 차림에 죽관을 쓰고 검정 띠에 흰 신발을 신은 사람이 제갈량을 틀어잡고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주유의 성을 돋워 죽게 만들어 놓고 또다시 조상까지 오다니 동오에는 사람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깔보는 것이냐?

제갈량이 급히 돌아보니 방통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크게 웃었습니다. 제갈량이 편지 한 통을 써서 방통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손권은 반드시 족하를 중히 쓰지 못할 것일세.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형주로 와서 함께 유비를 돕도록 하세. 그분은 관인(寬仁)하고 후덕(厚德)하여 공이 평생 익힌 재주를 반드시 저버리지 않을 것일세.

노숙이 손권에게 방통을 천거했습니다. 손권이 기뻐하며 방통을 만났습니다. 방통의 겉모습은 괴상했습니다. 짙은 눈썹에 찍어 당긴 듯한 들창코, 시꺼먼 얼굴에 짧은 수염은 호감이 가는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손권은 그런 모습을 보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한두 마디하고는 ‘미친 사람’으로 치부했습니다. 노숙이 재차 간청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노숙은 방통이 동오에 머물지 않을 것을 알고 조조보다는 유비에게 갈 것을 권했습니다. 유비에게 건넬 추천서도 써주었습니다.

유비는 방통이 왔다는 말을 듣자 지난날 수경선생에게 익히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방통의 겉모습에 실망하여 변방인 뇌양(耒陽)현의 현령에 임명하였습니다. 방통은 제갈량이 없는 것을 알고는 그가 써준 추천서도, 노숙이 써준 추천서도 유비에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유비의 마음을 읽고 싶었던 것입니다.

방통이 일사천리로 업무를 끝내자 감격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방통이 일사천리로 업무를 끝내자 감격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방통은 유비의 하대(下待)에 실망감도 있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수 없음을 알고 조용히 뇌양현에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현의 업무는 돌보지 않고 술로만 날을 보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유비는 장비에게 현지시찰을 통해서 업무를 등한시한 현령들을 엄벌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장비가 뇌양현에 도착하여 방통을 만났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방통을 보자 그 자리에서 혼찌검을 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손건의 만류로 방통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술이 깨지 않은 방통은 장비 일행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백 일 동안 쌓였던 공무를 처리하였습니다. 일 처리도 능수능란하고 틀림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채 반나절이 안 걸렸습니다. 장비는 깜짝 놀랐고,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그제야 진심으로 방통을 영접했습니다.

수경선생이 천하인재로 꼽은 방통. 출처=예슝(葉雄) 화백

수경선생이 천하인재로 꼽은 방통.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를 만난 방통은 그제야 제갈량과 노숙의 추천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비는 방통을 군사중랑장에 임명했습니다. 유비의 기쁨은 배가되었습니다. 수경선생이 천하통일에 필요한 인재로 추천했던 와룡과 봉추. 그 두 사람이 지금 모두 자신의 참모로 있음에 감개가 무량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획대로 익주를 차지한 후,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은 다 이룬 것이나 다름없이 느껴졌습니다. 유비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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