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리지만 가장 아름답다… 55세 여인의 '목발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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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고 이를 이룬다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어딘가에 이를 수 있다는 신념을 다지게 되지요."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인 '불굴의 여자 마라토너' 조 코플로위츠(55세). 일요일인 지난 2일(현지시간) 벌어진 뉴욕마라톤대회에서 그는 오전 6시에 맨 먼저 출발했다. 일반 선수들보다 4시간 이상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꼴지는 그의 몫이 됐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지난해에는 28시간으로 예년보다 조금 나은 성적을 냈지요. 올해도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출발에 앞서 그는 몰려든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3만명 이상이 뛰는 뉴욕마라톤에서 코플로위츠가 유일한 장애인은 아니다. 그가 소속돼 있는 장애인 마라토너 모임인 아킬레스클럽의 회원 1천여명이 올해도 참가했다.

그러나 코플로위츠보다 더 중증인 환자는 없다. 그는 30년 전 중추신경계가 굳는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가끔 신체가 마비되는 그는 6년 전부터 당뇨병까지 앓고 있다. 평상시에는 특수 지팡이 하나만 쓰지만 달리기 할 땐 두 지팡이를 사용해야 한다. 체중을 지탱하느라 손목뼈가 변형되는 고통을 겪지만 그는 이번 마라톤으로 열여덟번째 풀코스 완주라는 훈장을 달게 됐다. '인내의 화신'으로 불리는 게 전혀 이상치 않다.

그는 1988년 마흔살 때 마라톤에 처음 도전했다. 당시 기록은 19시간 57분으로 양호했지만 2000년엔 33시간이 걸렸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마라토너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용기에 감동한 일부 팬들은 월요일 한낮 그가 결승선에 골인하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그는 굳어지는 근육을 펴주기 위해 1마일 마다 쉬어야 하며, 2시간 마다 혈당체크를 받고 필요하면 인슐린주사를 맞아야 한다.

"1년 내내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편지를 들고 마라톤에 참가하지요. 그들과 나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는 뜻입니다."

맨해튼에 사는 그는 마라톤을 하면서 접수되는 기부금으로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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