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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아자부다이힐스에서 본 잼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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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1 요즘 긴자 등 도쿄 중심가 인기 식당은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 때문이다.

원성이 커지자 선착순으로 전환한 식당도 상당수인데, 이 또한 땡볕에 1시간가량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있는 건 관광객 정도다.

코로나가 풀리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일본 도쿄 등에는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의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가 풀리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일본 도쿄 등에는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의 모습. 중앙포토

집 근처에 호텔이 몰려 있어 유심히 살펴보면 정말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다.

적막이 흐르던 지하철은 시끄러워졌고,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던 도로에는 쓰레기가 많아졌다.

지난 3년간 볼 수 없던 광경이다. 그래도 일본은 콧노래를 부른다.

올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 이전의 70% 수준인데, 일본에서 쓰고 간 돈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덕분에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연율 환산 6.0%로 뛰어올랐다. 예상치의 두 배다.

일본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입국장 앞에 놓여 있는 관광객들의 여행가방. 김현기 특파원

일본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입국장 앞에 놓여 있는 관광객들의 여행가방. 김현기 특파원

그동안 묶여 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 여행도 지난주부터 풀렸다.

중국인이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일본이 압도적 1위. 당분간 폭발적 관광 수요가 예상된다.

눈길을 끄는 건 외국인들이 밝히는 '내가 일본을 찾는 이유'.

전통문화 체험, 맛집 탐방 같은 것이야 다른 국가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특이한 건 거의 모든 응답자가 "일단 갈 곳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는 사실.

볼거리를 끊이지 않고 만들어 낸 노력과 궁리의 결과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쿄의 전통 거리를 거닐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쿄의 전통 거리를 거닐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2 11월 말 오픈을 앞둔 아자부다이힐스를 최근 가보고 깜짝 놀랐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성냥갑 같은 상가와 오래된 주택들이 운집해 있던 곳에 64층, 330m 높이의 초고층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총 7000평의 상업시설에는 에르메스·불가리 등 최고급 브랜드와 전 세계 음식점 150곳이 입점한다.

오는 11월 24일 오픈하는 일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랜드마크의 전경. 사진 모리빌딩

오는 11월 24일 오픈하는 일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랜드마크의 전경. 사진 모리빌딩

빽빽한 상업시설 건물이야 다른 외국에도 흔히 있지만, 상업시설보다 더 넓은(7260평) 녹지 공간은 압권이다.

나무 종류만 320종 있다고 한다. 공간 자체가 경쟁력이다.

20년 전 최초의 복합 타운 롯폰기힐스 오픈 때 받았던 충격의 재현이다.

"다음은 런던·뉴욕과의 경쟁력 싸움"(쓰지 모리빌딩 사장)이란 말은 도쿄의 진화력(進化力)을 상징한다.

이미 관광 대국임에도, 변신의 노력은 쉴 틈이 없다.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주변의 모습. 녹지 공간이 7260평에 달한다. 사진 모리빌딩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주변의 모습. 녹지 공간이 7260평에 달한다. 사진 모리빌딩

아자부다이힐스 뿐 아니다.

시부야·신주쿠 곳곳에서도 대규모 재개발 사업을 통한 관광수요 창출에 한창이다.

지방도시도 다를 게 없다. 각자 독특한 관광상품, 특산물 개발이 끊이질 않는다.

올여름 교토·아오모리·도쿠시마 등 전통 축제에는 무려 20만 엔(약 183만원)의 VIP 좌석값을 내고도 관람하려는 외국인이 대거 몰렸다.

만족도가 높으니 재방문율이 64%나 된다. 한국은 40%도 안 된다.

볼거리 진화로 외국인 몰리는 일본
랜드마크 하나로 연 3000만명 유인
3만명 못챙긴 우린 매력, 실력 있나

#3 우리의 현실을 보자.

겨우 3만 명 조금 넘는 잼버리 대회 하나 못 챙겨 뒷수습에 5000만 온 나라가 난리를 쳤다.

기업·지자체·호텔·대학·K팝 스타들이 총동원됐다.

식당 주인, 일반 시민이 잼버리 대원들에게 "한국을 미워하지 말아달라"며 밥값을 냈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이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현장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연합뉴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이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현장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연합뉴스

잼버리용 K팝 공연이 급거 열린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잔디마냥 우리 자존심은 엉망이 됐다.

6조원의 홍보 효과 운운했지만, 이쯤 되면 6조원짜리 이미지 실추다.

그런데 정작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은 서로 남 탓이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라는 전임 대통령의 뻔뻔함이나 "적반하장, 후안무치"라 받아치는 현 정부의 안이함이나 국민 눈에는 '도긴개긴'이다.

무엇보다 영문 없이 당한 잼버리 청소년 대원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앞으로 한국을 기분 좋게 또 찾을 수 있을까.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4일 전북 부안군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을 찾아 시설물을 점검하고 직접 청소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4일 전북 부안군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을 찾아 시설물을 점검하고 직접 청소했다. 연합뉴스

자, 다시 아자부다이힐스.

이곳의 연간 방문객 목표는 무려 3000만 명.

대한민국의 2027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와 같다.

아자부다이힐스 한 곳의 흡인력이 대한민국 전체의 흡인력과 같다는 얘기다.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잼버리 대원 3만여 명도 제대로 감당 못 하면서 과연 그 1000배나 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하고 수용할 매력과 실력이 지금 우리에겐 있는가. 한숨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