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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만에 걷혀가는 페만 전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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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이라크 한걸음씩 양보/페만 해결 새 전기/미,인질석방에 환영·경계 교차/「팔」문제·영토 할양 등 협상걸림돌 많아
이라크는 외국인질 석방을,미국은 중동문제 국제평화회담 개최를 양해하는 상호 양보에 따라 5개월째 접어든 페르시아만 사태해결의 분수령이 마련되고 있다.
이라크는 페르시아만 사태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기 앞서 6일 전격적으로 외국인 인질을 석방키로 함으로써 사태전환의 일대계기를 제공했다.
인질석방 시기에 대해서는 공식언급이 없으나 주미 이라크대사는 『모든 인질이 최소한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비행기편만 허락된다면 사흘내에 모두 이라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곧 석방이 실현될 것을 시사했다.
미 국무부는 이라크 외무장관으로부터 이같은 석방통보를 공식 접수함에 따라 이라크의 이번 조치가 협상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이번 조치를 일단 환영하면서도 이같은 이라크의 유화적 조치가 협상과정에서 혹시 이라크에 유리한 협상위치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아직은 소극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의 외교적·군사적 압력이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일단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그러나 이로 인해 이라크군을 전면 철수시키려는 미국의 결의가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커 국무장관도 미 하원 외무위 청문회석상에서 『페르시아만 사태해결에 중대한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하지만 이라크가 유엔의 결의를 1백%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이처럼 단호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와의 협상가능성을 시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일 영국 BBC방송의 『미국이 중동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해 중동 평화회의를 소집할 것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 제의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쿠웨이트와 팔레스타인 문제 연계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해왔던 미국의 기존입장이 대폭 후퇴한 것임을 의미한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강온 양면전략설에 대해 미국은 물론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가 가칭 중동 평화회의의 개최문제와 관련,『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어떤 형태로든 미국이 방향선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라크의 일방적인 인질석방 조치로 미국의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이라크가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요르단·PLO·예멘 등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한 것은 향후 전개될 이라크의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라크가 요르단등과의 4자회담을 통해 팔레스타인 연계 재확인 및 인질석방을 결정한 것은 인질억류로 실추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명분을 되살리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관한 아랍권의 폭넓은 공감대를 유도해낼 수 있는 「묘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라크가 제2단계 조치로 쿠웨이트 주둔병력을 모두 철수시키면서 당초 원했던 국경지대의 루메일라 유전과 두개의 섬만 점령할 경우 미국은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평화이니셔티브를 묵살하고 끝까지 전쟁을 고집할 경우 국내·국제적인 반발여론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유사시 서방측 견제용으로 최고의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질들을 석방시키기로 결정한 이상 후세인 대통령이 미국과 전면전을 강행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이라크가 팔레스타인문제 연계라는 「고리」를 쉽게 풀지 않을 것이 명확한만큼 미­이라크간의 협상전도는 반드시 낙관적인 것이라고 단정키도 어렵다.
일찍이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예견했듯이 이라크가 부분점령에 평화공세를 펼때 국제사회의 대 이라크 제재 결속은 와해될 수 밖에 없으며 미국은 외교적·군사적 수단을 모두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당초 주장했던 원칙들을 얼마나 고수하게 될지 여부가 사태해결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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