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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톨이 탓’ 낙인 그만, 문밖으로 이끌 말길 먼저 열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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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08면

묻지마 범죄 폭주 막으려면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선생님께 자꾸 말을 아끼게 되네요.”

김지은(가명·33)씨가 한 이 말에 조안남 광주광역시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광주은톨센터) 상담사는 울컥했다고 했다. 벌써 20여 회. 얼마 안 남았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매주 한 차례씩 상담을 받았다. 은둔 3년차인 지은씨는 그 이유로 본가에서 갈등을 빚다 광주로 오게 됐다. 지난 8일 광주은톨센터는 조용했다. 은둔형 외톨이. 최근 잇따른 ‘묻지마 흉기 난동’ 등 각종 강력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성향’이다. 정말 그럴까. 은톨이들은 왜 생길까. 그리고 이들을 밝은 밖으로 이끌 해답은 있을까. 이런 물음이 광주로 발길을 이끌었다.

“은둔, 병도 아니고 인생의 한 상태일 뿐”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지은씨는 “버스 승객들이 나만 쳐다볼 거 같고, 은둔하는 걸 들킬 것 같았다”고 말해왔다. 그럴 때마다 조 상담사는 “두렵지만 해보자”며 ‘두려움 깨기’라는 소소한 미션을 줬다. 생각한 것만큼 두렵지 않을 수 있다고. 그렇게 반 년. 지은씨는 “이젠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며 “이제 탄다, 못 탄다 떠올릴 새도 없이 버스에 올라탄다”고 전했다. 이 ‘작은 성공’이 지은씨가 은톨에서 벗어나는 큰 불빛이 될 수 있을까.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광주은톨센터 상담실의 한쪽 벽면에 붙은 문구로 조명 빛이 비추고 있었다. 광주은톨센터는 2022년 세워졌다. 전국 최초다. 상담실 1곳, 회의실 1곳, 사무공간. 센터가 이렇게 간단한 구조로 된 이유는 은톨이들 위한 배려다. 내부엔 외부와 공간이 구분되도록 불투명 유리 벽면을 고양이 그림 천으로 가렸다. 테이블엔 쟁반 가득 과자가 담겨 있고, 곽티슈도 올려 있다. 편하게 먹으면서, 울고 싶으면 울면서 상담을 하자는 의미다. 센터가 정의한 은둔형외톨이는 전 연령층 중 6개월 이상 은둔상태를 지속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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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은톨센터 벽면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은둔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라고 백희정 광주은톨센터 사무국장은 대뜸 묻더니 자신이 답했다. “내가 은둔형 외톨이라서 못하나 봐.” 백 국장은 “은둔과 명랑은 모순돼 보이지만 그건 사회적 낙인 탓”이라며 “낙인을 찍기 전 사회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되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둔은 병도 아니고 인생의 한 상태일 뿐 명랑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명랑하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은씨처럼 말이다. 박주홍 부산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보통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정상인이 저럴 리 없다며 비정상 범주로 타깃을 돌리는데 그중 하나가 은둔형 외톨이”라며 “학교도, 직장도 안 다니고 정상이 아니니 범죄 가능성도 높은 게 아니냐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낙인 탓에 은둔청년들은 더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그리고 은둔청년은 더 늘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에 따르면 은둔청년은 2021년 기준 53만 8000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33만4000명에서 20만명 늘었다. 코로나가 은둔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김민정(가명·21)씨도 비대면 활동이 많았던 코로나 기간 은둔에 돌입했다. 민정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까지 오직 육상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한길을 걸어왔다. 대입에 중요한 스펙이 되는 경기에서 탈락했다. 탈락 이유가 경쟁 상대의 ‘배경’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민정씨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 그동안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다. 민정씨처럼 경쟁과 좌절이 은둔 이유로 꼽히는 비중은 높다. 보사연에 따르면 ▶취업의 연이은 실패(35%) ▶인간관계 어려움(10%) ▶학업 중단(7.9%) 등의 순으로 은둔 계기가 된다. 은둔청년은 혼자 사는 가구(29.1%)보다 가족과 같이 거주하는 형태(66.2%)가 두 배가량 높은 것도 주목해야 한다. 정명기(가명·17)씨의 경우다.

법률로 가두면 고립 심화시킬 수 있어

“말을 해야 알지, 그냥 있으면 누가 알아.” 명기씨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방문을 걸어 잠갔단다. 명기씨는 엄마가 신청한 학원 강의는 무조건 다 들어야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그 강도는 더 심해졌다. 항변하고 싶었지만 말할 새도 없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씨는 점차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함께 상담사를 찾았지만, 명기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김영호 사단법인 씨즈 고립청년총괄팀장은 “은둔청년의 상당수는 가정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아이가 스스로 뭘 하기 전에 부모가 실패하지 않게 여러 장치(학원 수강 등)를 만들어 놓지만, 그 장치에 기대 사실상 아이를 방치하고 결과로만 아이를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은톨이들은 “아무도 내 얘기를 듣지 않았다”고 흔히 말한다고 한다. 부모가 화부터 내고 대화가 자꾸 무산되니 ‘학습된 무기력’을 느껴 명기씨처럼 대화 자체를 안 한다. 공간적 단절까지 더해지면 은둔 상태가 시작된다.

가정 속 은톨이는 사각지대다. 사회적 시선 탓에 숨기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너는 왜 밖에도 안 나가고 맨날 집에만 있냐’ ‘어디 가서 말도 못한다’는 등의 말로 상처 주기도 하고, 은톨이가 된 자식에게 화가 난 나머지 아버지가 방문을 부순 사례도 있다. 백희정 국장은 “자녀니까, 가정 안에서의 문제니까 개별 문제로 두기보다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보사연은 20대 은둔청년이 늘어나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대비 2021년 연령대별 고립인구 출현비율을 보면 75세 이상(2%포인트) 다음으로 19~34세(1.9%포인트)가 가장 많이 늘었다. 은둔이 시작되는 연령대에서도 20~29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은둔 기간이 6개월 이상인 경우가 62%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은둔청년은 더 늘 수 있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기가 굉장히 중요한 건 독립된 시민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라며 “이제 막 의무교육이라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이 1~2년을 놓치게 되면 사회적, 개인적으로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25세에 은둔을 시작한다 했을 때 공공부조에 의한 생계, 의료급여 등 경제적 비용은 1인당 약 15억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에선 은둔청년을 새로운 복지수요로 업무추진계획에 명시, 2024년 예산안에도 복지대상자로 포함했다. 또 서울시, 부산시 등 각 지자체에서도 은둔청년을 위한 조례 제정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구성 중이다.

전문가들은 은둔 지원의 최종 목표를 취업, 사회 진출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백희정 국장은 “센터의 목표는 은둔청년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혼자가 아님을 인지하고 고립 탈출 의지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성아 연구위원은 “은둔청년을 별도 법률, 용어로 가두는 건 새 장벽을 만들어 재고립시키는 것일 수 있다”며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 등 여러 이유로 독립된 성인으로서 삶을 준비하기 어려운 취약청년을 묶어 종합지원이 가능한 청년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단절된 청년’, 일본 ‘히키코모리’로 정의…영국엔 ‘고독부 장관’ 있어

옥스퍼드 영어사전(제3판, 2010년)에 ‘Hikikomori’(히키코모리) 단어가 등재된 건 약 10년 전이다. 이미 고립·은둔 청년 현상은 해외에서 나타나고 있었고, 그때부터 각국에선 지원책을 고민해왔다.

우선 용어를 공식화한 게 두드러진다. 지원 대상자와 범위를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2003년 후생노동성에 의해 정의됐고 홍콩은 ‘은폐청년’, 미국은 ‘단절된 청년’으로 칭하고 있다. 근거법 마련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은 히키코모리법을 별도로 제정하기보다 사회복지법을 개정해 히키코모리를 수혜 대상자에 포함하는 작업을 지난 10년에 걸쳐 해왔다.

은둔청년 특성상 발굴이 어렵고 접근이 어렵다는 점에서 온라인 서비스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 미야자키현에선 온라인메신저 라인(LINE)을 활용해 온라인 상담창구를 운영 중이고, 홍콩에선 사이버 청소년지원팀(CYSTs)에서 온라인을 통해 선제적으로 은폐청년을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 특성을 반영한 지원도 중요하다. 미국의 ‘P3사업’은 지역별 복지 수요 대상자에게 맞는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령 시애틀에선 학교 밖 청소년의 교육 재참여 프로그램을, 뉴욕에선 학교 중퇴자나 위기청소년의 사회 재연결에 집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발 빠른 사회적 대응을 위해 관련 부처 장관을 신설키도 했다. 2019년 영국은 고독부 장관을 신설했고, 호주와 일부 유럽연합 국가에서도 외로움 책임 장관을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은둔청년 관련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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