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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요구대로 대의원 배제, 현역 물갈이 제안한 김은경 혁신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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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은경)가 10일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라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발표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30810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발표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30810

혁신위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를 권리당원 투표 70%와 여론조사 30%를 합쳐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현행 당헌(권리당원 40%·대의원 30%·여론조사 25%·일반당원 5%)에서 대의원 투표를 아예 없애고, 권리당원 비중을 두배 가까이 높인 것이다. 그간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해 왔던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이날 ‘재명이네 마을’ 등 커뮤니티에서 “혁신위가 해냈다”라며 환호했다.

당 대표 컷오프(예비경선)에도 권리당원 입김을 강화했다. 현재는 현역 의원과 자치단체장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 70%와 여론조사 30%를 합쳐 컷오프를 하는데, 혁신위는 ‘권리당원 투표 50%, 선거인단 투표 50%’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강경파 정청래·김용민·장경태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못 나온 건 ‘컷오프’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혁신안대로라면 이들이 차기 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에 대해 혁신위는 “당원이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 효능감을 느낌으로써 당 안에 무사히 자리를 잡는 데 초점을 맞췄다”(서복경 혁신위원)고 밝혔다. 대의원 투표 비중을 없앤 이유로는 “지지 기반이 없는 지역에서 확장성을 추구하던 게 대의원제의 기원인데, 지금은 전국 기반이 확장돼 그런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혁신위가 공개한 지역별 권리당원 비율은 수도권(서울·인천·경기) 42.1%, 호남(광주·전남·전북) 33.3%, PK(부산·울산·경남) 6.9%, TK(대구·경북) 1.8%로 혁신위 설명과 달랐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혁신안발표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혁신안발표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혁신위는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 공천’을 위한 공천 룰 변경도 제안했다. 우선 현역 국회의원 평가 하위 30%에는 경선에서 얻은 득표의 각각 20%(하위 20~30%), 30%(하위 10~20%), 40%(하위 10%)를 감산하도록 페널티(벌칙)를 강화했다. 혁신위는 “단수 공천도 최소화해야 한다”며 공천 신청자가 1명(부적격자 제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경선을 치라고 제안했다.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평가받아야 (후보자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이어 “수차례 의원직을 역임하신 분 중에서 후진을 위해 용퇴를 결단하실 분들은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주기 바란다.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의원을 역임하신 분 중 다시 출마를 준비하는 분도 불출마 결단을 내려달라”며 원내·외 중진 불출마를 압박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나 천정배 전 의원을 겨냥했냐’는 물음에 서복경 위원은 “혁신위에서 합의된 바는 없다”라면서도 “제 사견은 용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지도부와 다른 생각 가진 의원 솎아내기로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 전 원장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저는 농사를 지었고 수확할 권리가 있다”며 “노·장·청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3선 의원은 “이 혁신안은 민주당을 호남당, 개딸당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다. 영남은 내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혁신대상은 당 안에서 가장 기득권을 많이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며 “수차례 시장직·지사직을 역임하고, 연고도 없는 지역의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된 이재명 대표는 혁신 대상에서 피해갔다”고 꼬집었다.

비명계의 반발은 오는 28~29일 강원 원주에서 열리는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분출될 전망이다. 혁신위원이자 당 사무부총장인 이해식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안은 당헌·당규 개정과 연결된다”며 “일단 의원 워크숍에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행 방안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권리당원 입김을 키운 혁신안 내용이 민주당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정치학)는 “혁신위가 당원과 무당층, 당원과 당직자의 괴리가 크다는 점을 문제로 진단해 놓고, 정작 당원만으로 정당을 운영하라는 엉뚱하고 편향된 제안을 내놓았다”며 “당장 눈앞에 있는 비이성적인 지지자로 '개딸 정당'을 만들겠다는,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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