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유럽에 횡재세 확산…伊 "은행 초과이익에 40%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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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가 은행이 달성한 초과이익의 40%를 세금으로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 방침을 밝혔다.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에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리면서 예금금리는 더디게 인상해 예대마진을 늘려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정치권의 불만이 반영됐다. 높은 금리와 경기 침체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영국 등에서도 횡재세 도입 논의가 퍼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전날 각료회의를 열고 1년 한시로 은행 등 대출 기관이 달성한 초과 이익의 40%를 세금으로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대표 은행 인테사 상파울로가 올해 수익 전망치를 높여 발표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나온 방침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2021~2022년 이자 순익이 5% 넘게 늘거나, 2021~2023년 이자 순익이 10% 넘게 늘어난 은행에 그 차액을 '초과 이익'으로 산정해 과세할 계획이다. 횡재세 부과는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실행될 수 있다. 실행된다면 적어도 이탈리아 은행들의 연 세금 부담이 20억~30억 유로(약 2조9000억~4조34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애널리스트 등은 분석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AP=연합뉴스

"금리 인상에 은행만 경제적 승자 돼"

지난해 초부터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다. 그 새 각국 시중은행들은 기준금리에 맞춰 대출금리는 서둘러 올리면서도 예금금리의 인상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용 평가사 DBRS모닝스타에 따르면 이탈리아 5대 은행들의 상반기 총 수익은 105억 유로(약 15조19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4%나 급증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횡재세 부과 방침을 밝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와 기업 (차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그렇게 신속한 (예금 금리) 인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CB가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은행은 몇 안 되는 경제적 승자가 됐다"고 꼬집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횡재세로 걷힌 세금을 생활비 부족을 겪고 있는 서민을 위한 감세 정책 도입을 위한 재원,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이자 지원 등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해 4240억 유로(약 613조573억원)에 이른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금융산업 표적"…횡재세 퍼지는 유럽

고금리와 경기 침체, 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는 유럽 각국에선 이처럼 '횡재세' 논의가 활발하다. 스페인에선 올해부터 2년 간 한시적으로 은행과 대형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지난해 7월 상원을 통과했다. 은행 이자 순익이 8억 유로(1조1500억원)를 넘으면 4.8%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체코도 횡재세 도입법안이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다. 대형은행의 금리 인상 등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이 최근 3년간 연평균 과세표준액의 120%를 넘는 경우 초과액에 대해 60%의 횡재세가 부과된다. 헝가리는 은행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과 항공사, 통신사, 제약사 등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도 '횡재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낮은 예금이자를 제공하는 은행을 상대로 연말에 '강력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40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유로존 국가 국민이 생활비 위기 등을 겪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역설적으로) 정치인들이 금융 산업을 표적 삼아 지지를 얻는데 비옥한 기반을 제공한 격"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