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라면처럼…이탈리아 "파스타값 내려라" 불매운동 등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탈리아·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파스타값이 크게 오르자 떨어진 국제 밀 가격에 맞춰 소비자 가격을 내리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파스타 가격이 치솟자 이탈리아에서 식품업체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탈리아 남성이 지난 8일 북부 밀라노의 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파스타 가격이 치솟자 이탈리아에서 식품업체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탈리아 남성이 지난 8일 북부 밀라노의 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파이낼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 소비자 단체들은 감독 당국에 파스타 생산업체에 대한 가격 담합 가능성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치솟는 파스타 가격에 상한선을 정하라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파스타 불매운동까지 등장할 정도다.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40% 이상 치솟던 국제 밀 가격은 ‘흑해 곡물협정’ 등의 영향으로 수급이 안정화되면서 최근 소폭 하락했다.

그런데도 밀가루가 주원료인 파스타값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탈리아의 파스타 1kg당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7.5% 올랐다. 이는 같은 달 이탈리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8.1%의 두 배가 넘는다. 4월과 5월에도 각각 15.7%, 14% 꾸준히 상승했다.

반면 이탈리아 파스타의 주원료인 캐나다산 듀럼 밀의 가격은 하락세다. 이탈리아 최대 농업 단체 콜디레티에 따르면 듀럼 밀값은 지난해보다 30% 떨어졌다. 최고점과 비교해보면 현재 40% 이상 내린 상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파스타는 이탈리아 국민의 주식(主食)이며, 국민의 60%가 매일 파스타를 먹고 있다. 이탈리아 국민 1인당 파스타 소비량은 연간 23kg에 달한다. 쇼어캐피털의 클라이브 블랙 애널리스트는 FT에 "이탈리아 가정에게 파스타값 상승은 상당히 실존적인 위기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달 이탈리아 정부는 파스타 가격 인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생산업체, 유통업체 등으로 구성된 긴급위기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당국은 에너지 및 원자재 비용의 하락으로 자연스럽게 적정 소비자 가격을 찾아갈 것이라며,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8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한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판매 중인 파스타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8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한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판매 중인 파스타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지난 4월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파스타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27.6%, 21.8%, 21.4% 상승했다.

이에 프랑스 재무부는 식품 생산업체들이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세금 부과 등 금융 제재로 수익을 환수하겠다고 경고에 나섰다. 영국에선 슈퍼마켓 등 유통사가 임의로 식료품 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장려하는 운동을 펴고 있다.

반면 파스타 생산업체들은 공급망 악화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비용 상승, 물류 및 포장 등으로 전반적인 생산비용이 오른 상태인데, 그 중 원자재인 밀 가격이 내렸더라도 소비자 판매가 인하로 이어지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대형 파스타 생산업체인 라 몰리사나의 주세페 페로 최고경영자(CEO)는 "기업들이 최고가에 구매한 밀 재고를 소진 중이기 때문에 가격을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파스타 제조업체 드 세코의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파스타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파스타 제조업체 드 세코의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파스타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결국 이탈리아의 드 세코와 바릴라, 프랑스의 판자니 등 파스타 생산업체들은 다음 달 1일부터 가격을 내리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업체는 아직 가격 인하 시그널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식품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르테가는 FT에 "식품가격은 기본적으로 재료비 외 다른 비용을 고려할 때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충격이 발생하면 매우 빠르게 상승하지만, 내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밀 등 원자재 가격은 상당히 하락했으나, 임금과 포장 등 다른 부분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에서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른바 '라면플레이션(라면+인플레이션)'을 거론하며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해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에 비해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가격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지난 5월 소비자 물가 상승폭이 1년 전보다 3.3% 오르는 데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라면·김밥 같은 주요 먹거리의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아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