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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죽음의 약국'이었다…해열제 대란에 알게된 인도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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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세계 ‘인도산 약품’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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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국민 어린이 해열제’로 불렸던 감기약이 잇따라 제조·판매 중단 조치를 당했습니다. 시럽형 해열제에서 갈변 현상이 나타났는데, 문제는 인도산 첨가제였죠. 인도는 ‘세계의 약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 복제약을 팝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팔이 약장사’라면? 지난 1월 WHO에 따르면, 인도산 기침약을 먹고 숨진 아동이 7개국 300명 이상입니다. 대체 어떻게 약을 만들고 있는 걸까요.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감비아 수도 반줄에서 현지 당국에 의해 회수된 감기약 시럽 제품들. [AF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감비아 수도 반줄에서 현지 당국에 의해 회수된 감기약 시럽 제품들. [AFP=연합뉴스]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아기 중에 안 먹어본 아기가 없을 정도라는 동아제약의 어린이 해열제 ‘챔프시럽’과 대원제약의 콜대원키즈펜시럽이 지난 4~5월 각각 제조 판매가 중단됐다. 부모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국민 어린이 해열제 대란이 벌어진 건 도대체 왜일까?

배후가 인도라고 한다. 동아제약은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챔프시럽의 갈변현상 원인은 인도산 D-소르비톨 첨가제”라고 보고했다. D-소르비톨은 단맛을 내기 위해 쓰는 첨가제다. 코로나19로 감기약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산 대신 인도산을 추가로 썼는데 여기서 발견된 철 성분이 갈변 현상을 일으켰다는 게 동아제약의 설명이다.

동아제약 '챔프시럽'. 사진 약학정보원

동아제약 '챔프시럽'. 사진 약학정보원

한국에선 해열제 대란에 그쳤지만 지금 전 세계엔 인도산 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지난해부터 인도 감기약은 ‘죽음의 약’이란 오명까지 듣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7월부터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5개월~5세 어린이들이 급성 신장질환으로 연달아 숨지면서 불거졌다. 석 달 뒤 감비아 보건당국이 조사해 보니 숨진 아이들은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든 기침·감기 시럽을 먹었고, 복용 뒤 3~5일 내로 신장에 이상 증세가 생겨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도 제약사 메이든이 제조한 네 종류의 감기 시럽이 감비아 어린이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지목했다. 디에틸렌글리콜(DEG)과 에틸렌글리콜(EG)이 허용 수치 이상으로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DEG와 EG는 일반적으로 자동차 부동액과 브레이크 오일 등에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제조 원가를 낮추려는 일부 제약사들은 시럽형 감기약에 DEG와 EG를 부적절하게 사용해 왔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의 한 약사가 어린이 집단사망과 연관된 의혹이 있는 감기약을 보여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의 한 약사가 어린이 집단사망과 연관된 의혹이 있는 감기약을 보여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난해 10월 급성 신장질환으로 지금까지 200여 명의 어린이가 숨졌다. 대부분 5세 이하로, 감기 시럽을 먹고 사고를 당했다. 이들이 먹은 인도네시아산 감기시럽 8개 제품에서도 DEG와 EG가 검출됐다. 인도네시아는 인도 메이든 제약사의 제품이 인도네시아에 수입된 기록은 없다고 밝혔지만, 인도네시아가 의약품 대부분을 인도와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인도산 감기약이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의 사망에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두 달 뒤인 지난해 12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인도 제약사 마리온 바이오테크의 감기·독감 치료제 ‘도크-1 맥스’ 시럽을 복용한 어린이 19명이 숨졌다. 이 시럽에서도 EG가 검출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월 인도 제약회사 글로벌파마의 인공눈물 ‘에즈리케어’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에즈리케어를 쓴 사람들이 ‘녹농균 감염’으로 숨지거나 실명하는 사례가 발생해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에즈리케어 사용으로 인해 총 81명의 녹농균 감염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4명이 숨지고 14명이 시력을 잃었다.

인도산 약은 왜 ‘죽음의 약’이라는 비판을 듣게 됐을까. 인도 당국이 약에 대한 안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2007년에서 2020년까지 인도에서 생산된 의약품을 무작위로 수거해 분석한 결과 최소 7500개 제품이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인도 회사들이 국제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GMP)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도 정부는 6월부터 제약업체가 기침 시럽을 수출하려면 사전에 의무적으로 정부에 샘플을 보내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다. 의약품 사고가 나면 대책을 마련해도 말뿐이었기 때문이다. BBC는 “인도 정부는 의약품에 문제가 발견되면 전량 리콜(회수)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인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인도가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생산을 주도하며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인도 정부에 따르면 인도의 전 세계 복제약 공급 비중은 20%로, 연간 생산량 기준 세계 3위다. 미국과 영국에선 유통 복제약의 각각 40%와 25% 이상이 인도산이다.

세계적으로 의약품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서 인건비와 임대료가 낮은 인도로 의약품 생산이 아웃소싱 됐다. 현재 3000개가 넘는 글로벌 의약품 기업이 인도에 약 1만 개의 제약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루스 폴라드 블룸버그통신 오피니언 에디터는 “의약품 안전에 대한 글로벌 체계가 부재하다”며 “FDA의 해외 의약품 검증, WHO의 의약품 사전 인증 프로그램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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