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아끼려다 1조 토했다, 기업이 국제정치 모른 죗값

  • 카드 발행 일시2023.06.27

World View

대단한 기세였다. 단순 테러조직인 줄 알았던 이들이 ‘국가’를 자처하더니 어느덧 코앞에 와 있었다. 극악무도한 테러로 악명을 떨치던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였다.

프랑스 시멘트 기업 라파지(Lafarge)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2010년 시리아에 세운 공장이 잘 돌아가던 참이었다. IS를 피해 물러난다면 2500만 달러(약 324억원)를 고스란히 날릴 판국이었다. 고민 끝에 라파지 측은 IS 수뇌부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뒷돈’을 건넸다.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이들의 손에 쥐여준 돈은 약 700만 달러(약 90억원). 뒷골목을 주름잡는 깡패에게 자릿세를 낸 셈이었다.

약 10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90억원은 100배 이상이 돼 돌아왔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기소된 라파지는 7억7800만 달러(약 1조71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대가를 치렀다. “악마와 거래했다”는 비난 속에 회사 이미지는 금이 갔다. 라파지의 사례는 지정학이 기업을 뒤흔든 일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지정학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라파지처럼 어둠의 선택을 했다가 회사가 휘청거린다.

둘째는 ‘정의로운’ 선택을 해도 회사가 피해를 본다. 스웨덴 패션기업 H&M은 2020년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신장에서 생산된 면화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중국 내 불매운동에 직면하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한때 500여 개였던 중국 내 매장 수가 360여 곳(2022년)으로 줄었다. 스포츠 기업 나이키·아디다스 등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