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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독충에서 미식으로…해파리냉채

중앙일보

입력

해파리냉채. 사진 掌酷美食

해파리냉채. 사진 掌酷美食

여름에 먹기 좋은 중국 음식 중 하나가 해파리냉채(凉拌海蜇皮)다. 냉채라는 요리 이름처럼 시원해서 좋고 오돌도돌 씹히는 해파리의 식감에 오이를 비롯한 갖가지 채소가 어우러진 상쾌한 맛, 코끝을 톡 쏘는 겨자 소스의 자극까지, 더위에 지친 입맛을 되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해파리냉채,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중국에서는 해파리를 독침 철(蜇)자를 써서 바다의 독침이라는 뜻으로 하이저(海蜇)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해파리는 피부에 조금만 스쳐도 살갗이 부어오를 만큼 독성이 강하다. 이런 해파리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 생각을 했을까?

물론 식용 해파리는 인체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200여 종의 해파리 중 식용은 불과 10여 종에 불과하다. 수많은 해파리 중에서 식용 해파리를 골라 음식으로 발전시킨 옛사람들의 안목이 놀라운데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음식문화를 알면 흥미로운 사실 또한 한둘이 아니다.

우리와는 달리 중국에서 해파리냉채는 특별한 음식이다. 특히 춘절 새해 음식(年菜)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명절에 챙겨 먹는 잡채 비슷하다. 중국 전역의 공통된 풍속은 아니고 상해와 절강 등 바닷가에 인접한 화동 지역의 명절 음식문화다.

춘절 해파리냉채가 다소 뜬금없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맛도 맛이지만 해파리에 각종 채소를 곁들이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기에 명절 상차림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인문학적 배경도 있다. 질 좋은 말린 해파리를 요리하면 색이 노랗고 윤기가 돌아 마치 황금이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금 좋아하는 중국인들, 새해 해파리냉채를 먹으며 부자 되기를 소원한다.

북경 등지에서 새해 부자 되라는 뜻으로 춘절 식탁에 잉어요리를 차리고 상해 등지에서 조기탕수육 등을 준비하는 것과 닮았다. 잉어(鯉魚)는 중국어 발음이 이익(利益)과 비슷하기에 돈 많이 벌라는 뜻이 있고 조기(黃魚)는 비늘이 금빛인데 중국어 이름 역시 황금과 연결되니 금이 들어오는 것과 같아 풍요의 상징 음식이 됐다. 해파리냉채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해파리냉채가 춘절 음식이 됐다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그만큼 특별한 요리였기 때문이겠는데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해파리를 먹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특이하기는 하지만 고급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린 해파리가 어떻게 특별한 명절 음식, 잔치 음식이 된 것일까?

중국에서 해파리를 먹은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3세기 말, 진(晉)나라 때 장화가 쓴 『박물지』에 식용 기록이 보이니 대략 1700년 전부터다. 박물지의 특이한 물고기(異魚)편에 “동해에는 피를 뭉쳐놓은 것 같은 물체가 있다”면서 “현지 사람들은 이를 끓여 먹는다”고 적었다. 해파리에 관한 기록인데 중국에서 동해라고 했으니 아마 우리 서해쯤이 아닐까 싶다.

당나라 문헌에도 남쪽 사람들은 해파리를 식용으로 먹는다고 했는데 문헌 기록으로 보면 처음에는 머나먼 바닷가 마을에서 먹는 특이한 해산물로 여겼을 뿐 장안이나 낙양 같은 내륙의 중원지역까지는 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광동, 복건(福建) 등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별미로 여겼다.

이랬던 해파리가 냉채와 같은 연회용 고급요리로 발달한 것은 18세기 중반 청나라 무렵부터다. 청나라 전성기인 옹정제와 건륭제 때 당시 상류층의 고급요리를 기록한 『수원식단』에 해파리 요리가 보인다. 부자들의 미식으로 발전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이 무렵부터는 해파리가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넘어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청나라 의학서에는 해파리가 몸속 기운을 잘 통하게 하여주고 뭉친 피를 풀어주는 음식, 그리고 숙취와 해장에도 좋다고 나온다. 『귀연록』이라는 청나라 의학서에서는 심지어 묘약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동안에는 별별 것 다 먹는다는 중국에서조차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해파리였는데 왜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고급 요리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화적, 경제적 배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모든 음식 재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식재료들이 많았으니 해파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니 대륙을 차지한 만주 출신의 청나라 상류층에서 자신들에게는 흔했던 곰 발바닥 같은 전통 산해진미보다 먼 곳 바다에서 나는 희귀한 식재료였기에 더 특별한 진미로 여겼던 것 같다. 더불어 상류층의 식도락이라는 단순한 호기심과 유행을 명품 요리로 발전시킨 요리사의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한테는 단순한 별미 중국 음식이지만 해파리냉채는 상어지느러미, 바다제비 집 요리와 마찬가지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청나라 후반, 고도의 사치와 식도락이 만들어 낸 미식 요리였다. 참고로 조선 후기 문헌에는 이 무렵 중국 배들이 해파리를 잡으러 우리 바다를 수시로 침범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해파리가 곧 돈이 됐기 때문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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