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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엔 손해배상권, 예정자엔 계약해지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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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당정, 철근 빼먹은 LH아파트 대책 추진

국민의힘과 정부는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철근 누락 등과 관련해 부실 시공 아파트 입주자의 손해를 배상하고 입주예정자에게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긴급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아파트 부실시공 대책을 논의했다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김정재 의원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당정은 LH가 발주한 아파트뿐 아니라 민간 아파트도 전수조사해 부실시공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민간 아파트는 이번 주 중으로 점검 계획을 발표하고 다음 달 말까지 조사를 마칠 계획이다. 김 의원은 “(이번에 논란이 된)무량판으로 돼 있는 것은 아마 조사가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이른 시일 내에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무량판 구조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대책 및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도 발표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수조사와 별개로 이번에 부실이 확인된 LH 발주 15개 단지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보강공사를 완료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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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강공사, 책임자 처벌은 물론 입주자대표회의와 협의해 입주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하고, 입주 예정자에게는 재당첨 제한 없는 계약해지권 부여 등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정은 문재인 정부도 겨냥했다. 부실시공의 원인이 된 무량판 공법이 전임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 점을 들어 당시 정부의 주택 건설 관리·감독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관련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관행과 위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실공사를 유발하는 설계·감리 담합, 부당한 하도급 거래 등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김 의원은 “법 위반이 발견되는 경우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정 협의회는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긴급하게 소집됐다고 한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휴가 기간이지만 오늘 오전에도 비서실장, 관련 수석들과 무량판 부실시공 문제를 유선으로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윤 대통령은 어제(1일) 국무회의에서도 무량판 부실시공 관련 당정 간 긴급회의를 통해서라도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당정 “무량판 공법, 문 정부 때 본격화…위법 조사하겠다”

‘자유’를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왔던 윤 대통령은 하반기부턴 ‘안전’을 국정 운영 키워드로 보고 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경제 성장만을 중시하는 풍조 속에 국민 안전이 도외시돼 왔다는 것이 윤 대통령 생각”이라며 “각종 이권 카르텔과 기후변화, 묻지마 범죄 등이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안전은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자유보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며 “단순 지지층을 넘어 많은 계층의 국민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당정 협의와 별도로 국민의힘은 ‘부실시공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진상규명 작업을 진행한 뒤 필요하면 국회 국정조사도 추진할 방침이다. TF는 오는 4일 첫 회의를 연다. 국민의힘은 또 국회에서 건설산업기본법, 사법경찰법, 노동조합법 등 ‘건설현장 정상화 5법’ 입법 추진에 나선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까지 터진 걸 보면 문재인 정부의 주택건설 사업관리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추정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하다면 지난 정부의 국토교통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청와대)의 정책 결정자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원 감사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토목공학 박사 출신인 지상욱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철근 누락은) 양심을 팔아먹은 행위를 넘어 미필적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며 “단순 원인 파악에 그치지 말고 문제의 원인이 된 깊은 생태계 시스템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참에 그동안 이뤄지지 못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부실이 드러난 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 가운데 87%에 해당하는 13개 단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사를 진행했거나 준공을 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작성한 ‘정책현안 보고’에 따르면 ‘철근 누락’ 사태가 발생한 단지 가운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준공된 단지는 경기도 파주 운정 등 7곳,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는 경기도 양주 회천 등 6곳이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전 정부 탓을 하며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권은 책임 전가, 남 탓 타령을 그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보다는 비리가 있는 문제는 검찰이 수사하고, 국토부가 책임지고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하라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변경 국정조사를 막기 위한 국민의힘의 물타기 전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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